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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Mash up

시간과 기계 그리고 공간과 인간 - 20

by Azzurro 2018. 6. 20.



일본의 저명한 동물생리학자 모토카와 다쓰오 교수의 대표작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이 출간되었다. 1992년 출간 후 과학책으로는 이례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지금까지 90만 부 가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물들의 생존전략과 행동방식을 ‘크기’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본다. 예를 들어 3톤의 코끼리와 30그램의 쥐는 체중 차이가 10만 배나 나지만, 일생 동안 뛰는 심장 박동수는 약 20억 회로 동일하다. 이처럼 동물의 크기가 다르면 수명이 다르고, 민첩성이 다르고,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 행동권도, 생식 방법도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저자는 이런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생명의 특성으로 해석해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전혀 다른 생물체인 쥐나 코끼리가 어떤 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지 상상해볼 수 있고, 인간을 상대화하여 자연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동물들의 생김새와 행동의 진짜 이유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같은 것도 사람이라는 동물의 크기를 빼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크기를 아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교양이다. 생물을, 그리고 인간을 크기라는 시각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_24쪽

이 책에서 파고드는 질문 중 몇 가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동물들은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했는데, 큰 게 좋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같은 계통의 동물에서는 몸집이 큰 종이 진화 과정에서 더 늦게 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코프의 법칙’이라 한다. 몸집이 커지면 편리한 점이 많다. 몸집이 클수록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작아지므로 외부 환경의 변화에 강하다. 천적이 줄어들고, 먹잇감을 얻기도 쉬워진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있다. 몸집이 크면 개체수가 적고 한 세대의 수명도 길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는 환경 변화를 마주하면 이를 극복할 변이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멸종하기 쉽다. ‘코프의 법칙’은 옳지만 그 까닭은 그런 성질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거나(정향진화설) 큰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화는 작은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왜 바퀴 달린 동물은 없을까?
생물들은 수억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실험을 해왔다. 그렇다면 바퀴처럼 편리한 운동기관이 있는 동물도 있을 법한데, 왜 그런 동물은 없을까? 일견 엉뚱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거치는 동안, 동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거칠고 변화무쌍한 지구환경 속에서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해왔는지가 드러난다. 바퀴는 사람 같은 큰 동물이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서 평탄하게 쭉 뻗은 도로를 만들면서 비로소 사용하게 된 물건임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현대인의 자동차 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사용자가 사는 환경을 깡그리 바꾸어놓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기술을 훌륭한 기술이라 하기는 어렵다.”(104쪽)

- 지렁이가 뱀처럼 굵어질 수 있을까?
몸집이 작으면 순환계가 필요없다. 순환계란 몸속의 물을 휘저어 산소나 영양물질의 농도를 일정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란 장치인데, 몸집이 작으면 확산만으로 이 교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으면 호흡계도 필요없다. 동물들은 외부세계로부터 산소와 영양물질을 끌어들이므로 그 양은 표면적에 비례한다. 그런데 몸집이 클수록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작아지므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급이 늘어나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산소를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히 표면적을 늘린 것이 바로 호흡계이다. 그렇다면 지렁이처럼 혈관계가 있어서 붉은 피가 흐르지만 아가미나 허파 같은 호흡계는 없는 동물은 얼마나 굵어질 수 있을까? 또, 얼마나 작아야 호흡계나 순환계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들은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하다.

- 식물과 동물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식물과 동물의 서로 다른 몸 만들기 방법의 차이를 골조 건축과 벽돌 건축의 차이로 설명한다. 동물의 몸이 기둥과 대들보를 짜맞추어 지은 골조 건축이라면, 식물의 몸은 벽돌을 쌓아 지은 벽돌 건축이다. 벽돌을 구석구석까지 빈 곳 없이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 식물의 방법이며, 이때 세포 하나가 벽돌 하나에 해당된다. 이런 건축법의 차이에는 식물세포의 특징인 세포벽과 액포, 그리고 세포의 크기가 관련되어 있다. 동물의 세포는 10미크론 정도지만, 식물의 세포는 훨씬 커서 50미크론짜리도 있다. 같은 다세포생물인데 세포의 크기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것은 동물세포와 식물세포의 크기를 결정하는 제약 조건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 현대인은 그 크기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나?
생물의 세계에서 몸의 크기와 시간, 구조, 에너지 소비량 등 생명이 지닌 모든 특성은 그들이 사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인간도 물론 동물의 한 종으로, 자연의 일부이다. 현대의 인간은 과연 전체 생태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제 크기에 맞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까? 모토카와 다쓰오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적인 기초대사량을 2,200와트라고 봤을 때, 그런 기초대사량을 가진 동물은 체중 4.3톤, 즉 코끼리처럼 거대한 동물이라고 한다. 서식 밀도와 행동권에 대해서도 계산을 해보면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쥐와 같은 밀도로 살면서 코끼리 수준의 거리를 이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생명의 신비와 더불어, 자연의 일부이면서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인간의 본모습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널리, 오랫동안 읽힌 동물학 책은 없었다!”

“지금도 매년 1만 부씩 증쇄하고 있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이렇게 널리, 오랫동안 읽힌 동물학 책은 없었다. 생물의 크기에 대해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소개하고 설명한 책으로, 시간은 시계로 재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과 크기의 중요성을 일깨워 사람들의 자연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_일본동물학회 교육상 선정 이유

모토카와 다쓰오 교수는

동물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간은 절대 불변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때는 그가 동물학을 공부한 지 10년이 넘었을 때라 다른 의미에서 충격도 컸다.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곧 세계관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상대(동물)의 세계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수행해온 지금까지의 연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망연자실한 동시에, 그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은 지금까지의 교육에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와 반성을 동력으로 삼아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동물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방법론을 바탕에 깔고 쓴 책이 바로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이다.

그렇게 출간된 책이 지금까지 9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출간 이듬해에 ‘동물의 생리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 사이의 관계를 깊이 추구한 독창적인 책’이라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고단샤 출판문화상(과학출판 부문)을 받았다. 내용의 일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그림책으로도 출간되었다. 2014년 일본동물학회는 모토카와 다쓰오에게 교육상을 수여하며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가리켜 “이렇게 널리, 오랫동안 읽힌 동물학 책은 없었다”고 했다. 알로메트리 식, 레이놀즈 수, 탄성닮음 등 비전공자에게는 낯선 용어와 수학적 기술이 적지 않은 이 책이 그렇게 널리,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받은 저자의 수상 소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세상은 ‘유일성과 다양성’의 긴장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함을 잘라 유일한 원리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도, 다양성으로만 귀결되는 설명도 일종의 실수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몇 가지 원리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시간축은 하나가 아니다,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뇌수가 발달한 동물이 반드시 ‘고등한’ 것은 아니다. 각각의 생물은 각각의 세계가 있으며, 각 논리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 있다… 이런 개념은 생물학 이외에도 널리 통용될 것입니다. 생물학은, 모두가 배울 만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출판사 서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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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시간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심장 박동의 간격은 반복 활동의 시간 간격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시간이나 창자가 꿈틀거리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혈액 속으로 들어온 이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는 시간은 혈액이 순환하는 시간과 관계있을 것이다. 수명도 개체에게는 단 한 번뿐이지만, 종에게는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서 죽고 하는 반복 활동의 단위시간인 셈이다. 생물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반복 속도가 체중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반복 활동이 일어날 때, 한 번 반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오래 걸리고 작은 동물일수록 짧게 걸리는 것이다.
(/ p.22)

단순한 물리적 시간으로 따지면 코끼리가 쥐보다 훨씬 오래 산다. 쥐는 기껏해야 몇 년밖에 살지 못하지만, 코끼리는 100년 가까이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장의 박동수를 가지고 잰다면, 코끼리나 쥐나 똑같은 길이만큼 살다가 죽는 셈이다. 작은 동물은 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적 현상의 템포가 빠르다. 따라서 물리적인 수명이 짧더라도 코끼리나 쥐나 자기의 일생을 다 살았다는 느낌만은 같을지도 모른다.
(/ p.24)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같은 것도 사람이라는 동물의 크기를 빼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크기를 아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교양이다.
(/ p.24)

* 모토카와 다쓰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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