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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Now

자신의 이야기가 사라진 시대

by Azzurro 2015. 3. 24.

우리시대는 서사가 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의 능력을 망각해 버렸다. 자신의 일상, 자신의 인생, 자신의 배움이 모두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것이다. 동시에 청각도 잃어버렸다. 자신의 속내와 인생역전을 멋들어지게 이야기 할 줄도 모르지만, 남의 사연을 들을 줄도 모른다; 해서, ​남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엿보고, 자기 이야기는 정신과의사나 심리상담사를 찾아간다.

그러므로 사람을 위한다면 혹은 지금 운좋게(!) 사랑을 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서사의 능력을 키우도록 하라. 다시 말하지만, 서사는 화술이 아니라, 나의 삶과 외부가 맺는 관계성의 문제다. 따라서 서사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대략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생생한 힘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 물론 이 두 가지는 함께 맞물려 있다.

만약 지금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는 처지라면, 자기 비하와 헛된 망상에 빠져 헤매지 말고, 그 열망을 낯선 세계와 접속하는 동력으로 써 보는 건 어떨까. 사회봉사활동도 좋고, 시민운동도 좋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좋고, 낯선 네트워크에 들어가 친구관계 를 바꾸는 것도 좋다. 그렇게 되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일상도 탄력 붙게 된다. 외적 자극에 의한 촉발로 인해서다. 요컨대 핵심은 신체의 소통과 감응력을 높이는 데 있다. 즉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몸이 전혀 다른 '어펙션'(affection)을 내뿜게 된다. 그게 바로 서사의 동력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뭔가 '줄' 게 생긴 것이다. 전혀 다르게 변한 나를, 나의 싱싱한 일상을, 그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선물이 또 있을까.
(고미숙,호모에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