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공空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반야심경 중에서
------------------------------------------------------------------------
<시간에 대한 집착 혹은 강박은
‘현재'라는 공간을 왜곡시킨다.>
(시간과 인간 6편에서 모래시계는
시간인가 공간인가를 화두처럼 던졌다.)
모래시계 뿐만 아니라 모든 시계는 공간의 변화이며 항상 흘러가는 현재의 표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의 시계의 속박과 미혹에 포섭되어 살아갑니다.(6편에서 자세히 언급)
시계는 시간을 나타내는 고정불변의 기준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유일무이한 어떤 실체로 착각하거나 믿는 것 뿐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되는 시간과 시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망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연결된 공간의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수 많은 각기 다른 물방울들이 모여 항상 비슷해 보이는 강물을 형성하지만 사실 강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공간의 한 매듭이면서 그물 전체입니다.
끊임없이 펼쳐지고 접히는 매듭이며 그물입니다.
시간이란 것은 고정된 기준이거나 실체가 아니라 공간의 변화입니다.
어느 순간 관계망의 균형을 깨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때문에 세상을 전부 먹어 삼키려는 탐욕자들이 생겼고 그들은 시간 개념으로 사람과 사물을 모두 현혹하려고 합니다.
시간을 고정된 기준으로 둔갑시키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톱니바퀴처럼 포섭하고 조정합니다.
시간 개념에 포섭되지 않아야 현재라는 공간을 온전히 채우고 비울 수 있습니다.
‘나’라는 몸공간도 고정불변이 아닙니다. 고정이 아닌데 시간에 포섭되면 ‘나’라는 공간은 연결망에서 찢겨져 나와 블랙홀처럼 아픔과 죽음의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시간에 포섭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법칙과 기준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지고 접히는 연결의 그물망에 몸공간을 맡기세요~
다음 편엔 왜 그동안 제가 건축회사대표도 아닌데 공간! 공간! 노래를 불렀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응하시기를~
*비빔 박선생
'세상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 Shiba見 (0) | 2018.01.09 |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0) | 2017.11.17 |
따뜻한 물 (0) | 2017.08.22 |
시간과 기계 그리고 공간과 인간 - 6 (0) | 2017.08.04 |
당신에게는 현재現在가 있습니까 (0) | 201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