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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나이롱 那異弄 어떻게 다르게 놀 것인가

by Ganze 2016.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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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경험이 중요한 이유
그는 중2 때 국제결혼 한 이모를 찾아 혼자 집을 떠나 영국에 40일간 체류했던 경험이 있다. 이모부를 따라 펍(Pub)에서 짐 나르는 일을 도왔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격의 없이 대하는 그들의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때의 경험과 지나온 자신의 이야기를 엮은 포트폴리오로 유명 디자인스쿨인 영국 왕립예술학교 석사과정에 당당히 입학했다.

면접에선 “런던의 응급의료체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말해보라’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국가가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영국에선 앰뷸런스 이용자의 60%가 그리 위급한 환자가 아니어서 비용이 낭비되고 꼭 필요한 환자가 제대로 서비스를 못 받고 있다고 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오토바이 앰뷸런스다.

“오토바이 앰뷸런스를 먼저 보내 체크를 한 뒤 꼭 필요한 경우에만 버스를 부른다. 만일 현장에서 치료할 수 있다면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되고 교통체증이 심한 런던에서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답했다. 피자 배달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타 본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염 씨는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요즘 초중고등학교와 기업체에 강연을 나간다.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늘 학교와 학교 밖의 경계를 들락날락했다고 했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해 정규학교 교육만으로 공부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안 하겠다고 해 선생님께 숱하게 야단맞았다. 나는 그 시간에 영어학원엘 갔다. 아저씨들과 회화 수업을 듣는 게 좋았고 결국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됐다.”

그는 왕실 디자인 학교도 2학기만 마치고 중도에 돌아왔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보다 좌판을 벌여놓고 옷걸이 워크숍을 하고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지역 도서관을 찾아가 도서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독서대 보급운동도 펼쳤다.”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물음표다. 왜 이렇지?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 물음 자체가 권위를 깨는 것이다.

“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권위가 존재한다. 사물들을 내 마음대로 부수거나 꾸며도 되는데 겁을 먹는다. 원작자의 의도대로만 가면 그다음 것은 없다. 창조적 파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부숴보는 것 특히 내 방식대로 부수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옷걸이 발명가 염지홍 씨 인터뷰 글 중에서
(원문 이로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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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podbbang.com/ch/episode/75?e=21978830

손에 잡히는 경제, 경제 콘서트 

- 존 리 대표의 10년 후 한국은?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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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파괴는 아이들의 특권이다. 아이들은 같은 물건이나 내용을 보아도 다양한 것을 상상한다. 새로운 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 등을 대입시키고 그것으로 인지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은 창의력을 제한한다. 많이 알면 알수록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단순한 박스나 몇 가지 줄, 종이만 가지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노는 방법을 안다. 이런저런 상상을 곁들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우리의 창의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시 아이 때의 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 [Part 3. 무엇을 새로 가르칠 것인가] 중에서)

게임에서의 실패는 일종의 즐거움이다. 실패했다고 실망하기보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다시 도전하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은 게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자세기도 하다. 인생에서 겪게 될 무수한 실패와 좌절에 대해 무조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의연히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세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게임에 대한 부모들의 자세다.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아이들의 시각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보자는 것이다. 최근 나오는 게임 중에는 몸을 이용해서 가족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있어, 이를 통해서 가족 간의 유대와 운동 능력을 기를 수도 있다. 미션을 중심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나가면서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임도 많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게임이 나오면 먼저 권고하는 편이다. 게임에 대한 부모들의 시각에 따라 게임을 대하는 아이들의 자세도 달라진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숨어서 몰래하거나 또는 억지로 참게 하기보다 건강하게 즐기고 게임이 주는 유익을 누리는 방법을 찾을 때다.
(/ [Part 3. 무엇을 새로 가르칠 것인가] 중에서)

이제 전 세계적으로 18세 이하의 미성년자 대부분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을 전혀 모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들 세대는 언제나 월드와이드웹(www)에 접속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일을 해 내고 수월하게 정보를 찾는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무슨 특별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세대는 과거 세대와는 모든 면에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미래학자인 돈 탭스콧(Don Tapscott)은 앞으로 사회의 주역이 될 네트워크에 익숙한 '넷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칭하였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서는 이들 '디지털 네이티브'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들을 위한 것을 기성세대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 [Part 4. 어떻게 다르게 가르칠 것인가] 중에서)

*정지훈 저, '내 아이가 만날 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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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롤모델이 될 만한 인물은 다빈치보다는 오히려 맥가이버다. 한때 TV 드라마로 유행했던 맥가이버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독특한 설정이 있었다.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맥가이버가 기존의 스파이들과 달리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총을 포기한 대신 그는 화학, 물리학, 지질학 등 과학적 지식과 자신이 갖고 있는 도구를 총동원해 위기상황을 벗어나곤 했다. 현장의 조건을 십분 활용하는 특성 때문에 그의 이미지는 학구적이거나 모범생이라기보다는 행동가, 모험가에 가깝다. 맥가이버가 우리에게 주는 놀라움은 무엇보다도 위기관리 능력과 즉흥적 대처능력이 아닐까. 그는 계획대로 움직이는 대신 순간순간 직면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생각하면서 경이로운 위기탈출 능력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허를 찔린 놀라움과 함께 일종의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맥가이버는 도구와 사물, 지식과 환경, 이것들과 저것들 간 위기상황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부단히 전개하는 위기극복의 달인이다.
(/ '2부 누가 브리꼴레르인가?' 중에서)

도요타 자동차의 핵심가치 중에 ‘현장(現場), 현물(現物), 현실(現實)’이라는 3현주의(三現主義)가 있다. 남의 손을 거친 2차 정보에 의존하지 말고 근원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현물이 있는 현장으로 가서 현실을 직접 겪으라는 것이다. 현장에 가야 현실을 만날 수 있고, 현실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남다른 생각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서 고민만 하지 말고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체험적 깨달음이 증발된 사고나 사상은 관념의 파편일 뿐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든 내 생각이든 다양한 체험을 하며 적용해본다. 몸이 동반되지 않은 사고는 참을 수 없는 인식의 가벼움만을 줄 뿐이다.
(/ '2부 누가 브리꼴레르인가?' 중에서)

뫼비우스의 띠는 브리꼴레르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첫째, 안과 밖, 앞과 뒤의 구분이 없어지고 끝이 없다는 점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에서 시작했지만 다시 밖으로 연결되고, 밖에서 시작했지만 다시 안으로 들어온다. 뫼비우스의 띠에는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브리꼴레르가 되는 길에도 끝이 없다. 끝이 없다고 하니 절망스러운가? 그러나 끝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출발할 수도 있다. 마치 우리말 ‘끄트머리’와도 같은 뉘앙스다. 끝에 머리가 있다는 이 말은 끝에서 다시 출발하는 시작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브리꼴레르는 지금까지 축적한 전문성의 깊이와 넓이에서 다시 파내려가면서 동시에 넓이로 뻗어나간다. 수직적 깊이를 심화시키면서 동시에 수평적 넓이를 확산시켜 나가는 부단한 탐구여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둘째, 분야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수직적 깊이를 심화시켜나가는 브리꼴레르에게는 분명한 자기정체성이 있지만,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의 분야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학문적 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나들면서 부단히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가기 때문이다.
셋째, 뫼비우스 띠는 세상에 ‘당연한 것’이나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상식이라는 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판단기준일 뿐, 언제든 부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브리꼴레르가 직면하는 부조리와 모순은 누군가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구분해놓은 경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에, 그 경계를 무너뜨린다면 부조리와 모순을 극복할 가능성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다.
(/ '3부 어떻게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가?' 중에서)

고욤나무는 감처럼 큰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감나무를 접목하면 가능하다. 단, 그러려면 고욤나무의 가지를 완전히 잘라내고 그 자리에 감나무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 고욤나무가 큰 열매를 얻으려면 가진 것을 버리고 감나무 가지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뿌리와 커다란 줄기는 그대로 간직한 채 감나무 가지를 내면에 심는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마치 조개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이 조개의 속살에 상처를 내고 아무는 과정을 통해 진주가 탄생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 아픔을 거칠 때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
융합도 마찬가지다. 지식의 연금술은 다른 분야의 정보나 지식을 융합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재탄생시키는 방법이다. 매시업이 다양한 정보를 뒤섞고 버무려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의 편집술이었다면 지식의 연금술은 나의 전문분야와 다른 전문분야의 개념이나 지식을 융합하는 것이다. 지식의 편집술이 물리적 혼합이라면 지식의 연금술은 이종결합 또는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개념이나 지식을 재창조하는 화학적 융합과정이다. 남다른 지식을 잉태하려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벗어나 다른 분야의 지식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다양한 지식융합을 통해 기존 지식을 새롭게 재탄생시켜야 한다.
(/ '3부 어떻게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가?' 중에서)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의 몸은 편안함의 늪에 빠진다. 편리와 편안함이 편안하게 자신을 죽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불편한 사람을 만나야 배움이 있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책을 읽어야 뇌가 긴장하고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려고 발버둥치게 된다.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종국엔 인간적 삶의 조건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금 당장은 안락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안락사로 인도할 수 있다. 미꾸라지 어항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는 불편하다. 그런데 불편한 메기가 있어야 미꾸라지가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다. 진주 속으로 들어온 불편한 모래알이 결국은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를 만들어낸다. 낯선 분야, 편하지 않은 사람, 뇌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으로부터 받는 불편한 자극이 삶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 '3부 어떻게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가?'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한 전문성은 타인의 아픔을 마치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는 공감능력과 옳은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추진하기 위해 애쓰는 도덕적 판단력을 겸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전문지식과 기술의 탁월성과 윤리적 자세, 그리고 전문성을 활용하는 도덕적인 행위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레테’라 했다. 즉 전문지식의 탁월성과 덕(德)을 겸비한 상태로, 미덕을 갖춘 최고 경지의 전문성을 지칭한다. 아레테를 겸비한 브리꼴레르라야 1부에서 논의한 멍청한 전문가, 답답한 전문가, 무늬만 전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수 없는 전문가가 범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 '3부 어떻게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가?' 중에서)

불을 잘 끄는 소방관은 책상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불타는 위기상황에 뛰어들어본 체험적 지혜가 불 끄는 소방관을 만든다.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다 얻는 회의의 결론은 ‘적극 검토’로 귀결되며, 심각한 회의(懷疑)가 드는 회의(會議)는 기업을 더욱더 위기에 빠뜨린다. 지금 기업에 필요한 인재는 비록 완벽한 대안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위기 상황에 뛰어들어 기업을 난국으로부터 구출해내는 브리꼴레르다. 브리꼴레르는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사색적 인재라기보다 행동하면서 대안을 찾아가는 실천적 인재이고, 완벽한 준비 끝에 비로소 행동에 옮겨 장중한 화음을 연출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기보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즉흥적으로 연주를 시작해서 임기응변력으로 한 편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재즈 연주자다.
(/ '에필로그' 중에서)

*유영만 저, '브리꼴레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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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지 말입니다.
한국의 교육열이 식을수록
우리 아이들의 머리,마인드,미래는
아주 쿨해질 것입니다.

*비빔 박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