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을수록 점점 '사람 속마음은 정말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생각과 감성은 모두 '뇌' 안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뇌는 두개골이라는 두껍고 어두운 '감옥' 안에 갇혀있는 '죄인' 같다.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뇌가 직접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것처럼, 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깥에서 읽어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선한 사람인지, 출세할 사람인지, 살육을 해서라도 왕 자리를 탐낼 만큼 탐욕스러운 사람인지…. 얼굴만 보고도 사람 성품과 운명을 읽을 수 있는 천재적 관상쟁이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정말 얼굴만 보고 한 사람의 생각과 성품을 알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얼굴 생김새만 보고 사람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일까?
18세기 유럽에서 인기 있었던 골상학(Phrenology) 역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오스트리아 해부학자였던 갈(Franz Joseph Gall)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뇌의 모든 영역은 기능이 같을까? 몸은 팔·다리·머리 같은 기능적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면 뇌 역시 부위마다 기능이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많이 쓸수록 팔다리에 근육이 생기듯 뇌 부위가 활발할수록 주변 두개골 역시 늘어난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결국 골상학자들은 '선한 사람' '출세한 사람' '범죄자'의 두개골을 손으로 만져 차별화되는 부위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출세한 사람의 뒤통수가 튀어나왔으면, 뒤통수 부위가 바로 그의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골상학 그리고 관상 모두 현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론이다. 물론 유전적 차이 외에 환경적 차이 역시 얼굴 생김새에 변화를 준다. 대한민국 사람과 북한 사람의 얼굴만 비교해도 쉽게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얼굴과 두개골 모양이 사람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 모두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 외에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출세할 관상을 가진 사람이 정말 출세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물론 있다. 그렇지만 출세할 관상을 가지고도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거꾸로 그렇지 않은 얼굴로도 출세한 사람이 많다. 우주는 확률 시스템이다. 줄담배 피우며 고래같이 술 마셔도 100세까지 장수하는 사람이 있듯이, 확률적으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출세할 관상을 가진 사람 100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 100명에게 동일한 유전적·경제적·사회적 조건을 준 상태에서 그들의 미래를 관찰해야만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관상이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관상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는 우리의 근거 없는 믿음'이 타인의 운명을 좌우할 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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