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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Now

자동차는 메시지다.

by Ganze 2015. 3. 16.

운명을 온전히 누린다는 것은
메타포로 자동차에 비유된다.

성향(차종)과 맞는 역할(용도)을
알고 잘 길들일 때
(자신의 몸을 아끼고 조심히 다룰 때)
마주하는 운명(길)마다
자기자신이 그 운명(길)의 주인이 된다.

*비빔 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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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저항하면 끌려가고,
운명에 순응하면 업혀간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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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자
메시지인 시대

대한민국은 가히 '쇼핑의 제국'이라 할 만하다. 자동차에 대한 맹목적 집착도 다름 아닌 이 제국의 산물이다. 미국이나 유럽, 남미처럼 나라가 큰 것도 아니고, 항공편에 고속버스, KTX에 이르기까지 각종 대중교통수단이 발전된 나라에서 전국민이 이토록 자동차에 집착한다는 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는 더 이상 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이다.

어리버리한 민석이를 몇 달째 만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애의 스포차카 때문이었다. 차창을 열고 아파트 단지가 붕붕 올리도록 커다란 음악을 틀어 놓은 채 나를 기다리는 은색차! 아파트 입구를 나와, 내가 타주기 만을 바라고 있는 자동차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걸어가 도어를 당길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중에서)
지금 이 여성이 스포츠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그 자체로 '성욕'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속담은 이렇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 하지만, 이젠 반대다. 자동차가 고급이면, 좀 덜떨어진 남친도 섹시하게 보인다.

한 후배가 이런 이야기를 들여주었다.
한 남학생이 버스에서 청순가련해 보이는 여학생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 슬쩍 다가가 어디서 내리냐고 물었다. 그때 여학생이 독백처럼 내뱉은 말,"버스 타고 다니는 주제에 어디서 작업이야? 재수없게!"
이렇듯 자동차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 라, 그 자체로 남근(혹은 우상)이다. 자동차의 생김새, 자동차의 속 도, 자동차의 폐쇄성, 이 모든 것은 성욕의 쾌락적 배치를 그대로 보여 준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이반 일리히의 책이 있다‘
이걸 패러디해서 말해 보면,
성욕은 자동차와 함께 온다!'
(고미숙,'호모에로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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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느끼는 강렬한 페티시, 상징과 은유로 그려지는 에로티시즘

소설 '크래시Crash'

[크래시]를 '광기 어린 도착적 소설'로 치부할 수 없는 점은 바로 제임스 발라드의 필력이다. 내용 면에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외설적이고, 때론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속속 등장하지만, 그의 글을 단선적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는 그런 난잡한 내용 속에 은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링컨 자동차라는 물체를 내부와 외부로 설정한다. 내부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성행위에 몰두하고, 이를 지켜보는 제삼자가 경외하듯 지켜본다. 외부에서는 남녀의 애무가 격렬해질수록 자동차를 애무하는 세차기의 움직임도 강렬해진다. 이런 인간의 성관계를 자동차로 대변되는 기계 문명과 연결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는 등장인물들이 테크놀로지를 페티시로 삼고 그것에 쾌감을 느끼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단지 '기괴하다, 불쾌하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다. 이 작품의 적나라한 표현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묘미가 될 것이다. 제임스 발라드의 상상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크래시]원작과 영화

[크래시]는 원작자인 제임스 발라드조차 자신의 글이 굉장히 선정적이고 파격적이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수 없을 거라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을 말렸고, 제작사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도덕적인 위기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감독의 대리인조차 [크래시]를 찍는 것은 당신의 경력을 끝장내버릴 거라며 극구 말렸지만, 크로넨버그 감독은 이런 말에 쉽게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이유로 기어이 영상에 담아내고야 말았다.
[크래시]는 96년 칸영화제에서 영화의 대담함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크래시]가 대상을 받지 못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크래시]는 이브닝 스탠다드의 영화 비평가, 알렉산더 워커로부터 "타락의 한계를 넘어선"이라는 실망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런던 영화제가 열리던 영국에서 첫 상영되는 날, 데일리 메일의 첫 페이지에 "자동차 충돌 섹스 영화를 금지하자"라는 기사로 도배되기도 했다. [크래시]는 많은 논란과 파장을 일으켰으나 제임스 발라드의 '걸작품'으로 회자되면서, 그의 원작소설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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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의 자율주행차 F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