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이란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어떤 강한 촉발에 의해 공통의 리듬을 구성하게 된 특정한 시간대를 뜻한다.
사랑은 나 자신의 문제다.
어떤 대상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욕망이 솟아오르려면 시절을 타야 한다. 시절을 타게 되면 아주 작은 촉발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봄이 오면 겨우내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순식간에 땅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로 눈이 맞는다는 건 상대방 역시 같은 흐름을 탔다는 의미다. 만약 이 시절을 타지 못하면 한쪽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 법이다. 둘이 서로 다른 시공간적 좌표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마음을 편안히 먹고 시절인연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우주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사랑의 소멸 또한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이 바뀌면 아무리 불같던 사랑이라도 순식간에 결별을 맞이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순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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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것과 차이는 건 동일한 사건이다. +-방향만 다를 뿐, 일종의 어긋남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 단지 역할만 다른 셈이다. 그리고 결별의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랑할 때 아무 이유가 없었듯이, 헤어질 때 역시 마찬가지다. 멜로드라마에서처럼 선악과 시비, 인과가 그렇게 선명하게 갈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시절인연이 어긋난 탓이라고밖에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말이다. 사랑도, 삶도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이 바뀌면 서로 헤어져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어떤 사건들 때문에 헤어진다기보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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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둘만의 역학적 배치를 만들어 내는 건 맞다. 또 열정의 차이에 따라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맞다. 헌데, 가장 중요 중요한 건 시절인연이다 말하자면, 대상이 누구냐보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 가 더 결정적이다 즉 어떤 특별한 '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 관계에 균열이 일어났다면, 즉 누군가 먼저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일단 둘의 인생행로에 커다란 '시공간적 격차'가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점에선 가해자, 피해자가 있을 수 없다. 둘 다 그 간극만큼의 번뇌를 감당해야 하는 까닭이다.
소위 '차는 쪽'도 그 어긋남이 가져오는 번뇌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역시 감정의 온전한 교감에 있어 실패한 건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감정과 행위가 그런 식의 굴절을 겪는 것에 대해 충분히 통찰할 능력이 없다. 그것을 일러 무명 혹은 무능력 이라 이른다. 어리석음과 무능력은 폭력과 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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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비열한 사기꾼이거나 변덕스런 바람둥이였다면, 상대를 비난하고 복수의 칼을 갈기 이전에 그런 상대한테 꽂힌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야 할 다. 대체 나의 어떤 성향이 그런 대상을 욕망하도록 유도했는지, 그런 식의 시절인연이 인생 전체의 리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등,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반드시 동일한 상황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상대한테만 끌리는 경우는 참으로 흔하다. 이걸 단지 상대의 도덕성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 있을까? 요컨대, 어떤 경우건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사건에는 두 사람의 성향 및 행로를 포함하여 시공간적 흐름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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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절인연이 어긋나게 되면 서로 책임전가를 하느라 바쁘고, 그것이 더 감정적 골을 부추겨 사랑과 배려가 졸지에 원한과 복수의 정서로 돌변해 버린다. '너 없인 못살아 '에서 '너 죽고 나 죽자'로, 남는 건 결국 누가 찼는가 누가 차였는가,뿐!
덧붙여 사랑과 우정 사이의 깊은 단절도 이런 양상과 맞닿아 있다. 사랑과 섹스도 가까운 개념이지만, 사랑과 우정 역시 이웃사촌이다. 하지만, 사랑과 섹스 사이에 만리장성이 가로놓여 있듯이, 사랑과 우정 사이에도 아주 깊고 차가운 강이 흐른다. 남녀 사이에는 우정이 불가능하다----모든 멜로의 대표적인 공식구 중의 하나다. 대체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과 우정의 차이를 견뎌 내기가 힘들어서다. 그럼, 차이가 대체 뭐지? 배타적 소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랑은 존재를 '통째로' 차지하는 것인데 반해, 우정은 그런 식의 독점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승부를 걸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모든 연애는 '차거나 차이거나' 하는 양분법적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사랑이 정말 소중하다면, 또 진실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조건하에서 어긋나게 될 경우,
우정을 통해 그 열망을 지속시키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아니, 그 이전에 사람과 우정 사이를 가르는 이 지독한 이분법이 삶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과연 유용한 전략인가?
(고미숙,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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