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속으로

오공, 비우는 경지에 이르러야 일단 살 수 있어

by Ganze 2017. 6. 30.

손오공은 어째서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간단히 말하면, 이 대결은 유위법과 무위법의 대결일라 할 수 있다.
손오공은 철저히 물질과 문명, 곧 유위법의 화신이다.
변신을 하고 불멸을 쟁취하고 하늘을 지배하고....,이것은 자아의 무한증식을 의미한다.
이 유위의 회로를 밟는 순간 누구도 멈추지 못한다. 인류역사가 그 산 증거다. 진시황을 비롯하여 모든 제왕들은 제국을 정복, 통일한 이후 불로장생을 갈망했다.
모두가 실패했지만 이 욕망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을 탐구하고 과학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걸 활용해서 무기를 만들고 다시 세계를 정복하고, 그 다음엔 또 불멸을 시도하고, 할리우드 영화가 주야장천 반복하는 패턴이 이것 아닌가. 세상을 내 손 안에 넣고 영원히 쥐락펴락하고 싶은 욕망!

반면 ​​​​석가여래는 이 세계의 근원적 무상성을 터득한 존재다. ​​마음에는 자성이 없다.
돌원숭이에게 근본이 없듯이, 그것은 불현듯 생겨난, 곧 ​​특별한 인연조건의 산물일 뿐이다.

아울러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생성/소멸한다. 불멸은 없다. 불멸하는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래서 무상하다. 이 무상의 방법적 표현이 무위다. 하지만 마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그때부터 인간은 무위법을 거부한다. 자아에 대한 집착과 증식, 이것은 결국 모든 타자들을 먹어치우면서만이 가능하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이것을 멈추게 하려면 유위법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하늘나라의 온갖 고수들이 다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석가여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무위법을 온전히 터득한 존재다. 유위법은 결코 무위법을 이길 수 없다.
​​무위법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지배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욕망 그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손오공을 오행산에 가둔 것도 의미심장하다. 목화토금수, 오행이 순환하는 이치를 사무치게
터득하라는 뜻일터. 자신을 증식하면서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옥황상제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려 들지 않는 오만함,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방방 뜨는 조급증, 이것을 치유하려면 오행산으로 눌러 놓는 수밖엔 없다. 하도 단련된 몸이라 죽이기도 어렵지만 죽인다 한들 도룩묵이다. 언젠가 또다시 마음은 탄생할 것이고 똑같은 행로를 밟아갈 터이니 말이다.

이렇게 꼼짝없이 갇힌 채 구리물을 먹으면서 500년 뒤 자신을 풀어 줄 스승을 기다리는 것, 천지가 자신을 낳아 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만이 제국과 전쟁에 중독된 마음을 다스리게 해줄 것이다.
인류의 운명 또한 다르지 않다. 소유와 증식을 향해 가는 한 평화는 없다! 일단 멈추는 것,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만이 길이요 명이다. 그러므로 존재와 세계의 구원을 꿈꾸는 존재라면 누구든 이 여행기를 지도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왜 손오공이 이 기막힌 여행의 주인공인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미숙, '길 위에서 길 찾기' 중에서

---------------------------------

현실의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손오공의 머리를 조이는 '긴고테' 같은 것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직함이나 지위 그리고 익명성 뒤로 숨은 닉네임들. 직장, 조직, SNS, 크고 작은 사회 곳곳에서 그것들이 실체 아닌 실체로 둔갑해 내면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점점 이질화되고 분리되고 있다. 스스로 벗어 던져 자유로울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해 오히려 그것에 더 옥죄이는 꼴로 살아간다.

*비빔 박선생
---------------------------------

마지막으로, 손오공에겐 반드시 풀어야 할 '대업'이 하나 있다. 긴고테를 풀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삼장법사가 말한다. "예전에는 너를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법력을 써서 너를 다스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미 부처가 됐으니 벌써 저절로 없어져 버렸느니라. 아직까지 그 테가 머리 위에 남아 있을 리가 있겠느냐? 한 번 만져 보아라. "
누군가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스스로 풀렸다. 그렇다!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고미숙, '길 위에서 길 찾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