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무너지면
회사도 사회도 무너진다.
나는 한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거의 모든 워킹맘이 그렇듯 너무나 바쁜 엄마였다. 잦은 야근에 아이들은 엄마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첫아이를 낳고 힘겹게 이어가던 회사생활은 둘째를 낳은 후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익숙해질 수 없는 두 아이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을 근근이 이어가던 중 남편이 스웨덴으로 발령이 났다. 우리 가족의 스웨덴행은 갑자기 결정됐다.
스웨덴에서는 공원에 가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스웨덴 부모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스웨덴 엄마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어떤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엄마도 당연히 직업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직업의 유무를 묻는 질문은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묻는 것이다. 스웨덴의 여성 취업률은 주변 북유럽 국가들과 같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톡홀름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스웨덴 여성들은 거의 모두가 직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웨덴은 한국이 최하위를 차지한 만 3~5세 자녀를 둔 기혼여성의 취업률 역시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이 일하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하지 않는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
스웨덴에서는 아빠 혼자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아이를 챙기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갓난아기는 아기띠에 넣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까지 둘을 데리고 공원에서 놀고 있는 스웨덴 아빠를 보았다. 아이 두 명을 한번에 챙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스웨덴 아빠는 척척 해내고 있었다. 아이 둘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시간은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시간인 오후 2시. 무슨 일 하냐고 물으니 스웨덴 통신회사에 다니고 육아휴직 중이라고 하였다. 아내가 둘째를 낳고 8개월간 육아휴직을 한 뒤 복직했고 그 후 6개월 정도 본인이 휴직하고 아이들을 돌볼 예정이라고 했다.
스웨덴은 법적으로 480일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그중 60일은 무조건 남성이 사용해야 하며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스웨덴에서도 한때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출산율이 낮아진 적이 있다. 스웨덴 정부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지하면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양성평등에 기반을 둔 가족, 사회가족정책을 만들고 육아와 아동복지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인식을 키웠다. 스웨덴에서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월급의 최대 80%까지 국가가 보전해 준다. 스웨덴은 워낙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이니 육아휴직 시 지원받는 금액 자체를 우리나라 사정과 비교하고 싶진 않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남녀 상관없이 1년간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받는다. 이는 OECD 국가 중에도 최고 수준의 휴직기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용이 안정돼있는 직업군에서 여성에 한해 한정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남성의 육아휴직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요즘은 한국 아빠들도 육아에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아빠들이라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지 않으랴. 하지만 아빠는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야근, 회식, 주말근무는 빠질 수가 없고 상사 눈치가 보인다. 아무리 좋은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한들 아예 사용해볼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남성이 휴직을 한다는 것은 이직을 준비하거나 승진을 포기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반면 스웨덴 회사는 업무 효율성을 중시하고 근로자의 시간 활용에 관대하다. 야근을 하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일을 못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야근을 자주 하게 되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어 가정불화가 생기게 되고 업무에도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긴다. 직원의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회사 전체, 나아가 국가 전체까지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닥친 상황만 생각하면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의 육아휴직을 반길 수는 없다. 하지만 스웨덴 회사는 육아휴직 후 돌아온 직원은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성실히 일하는 직원이 된다고 믿는다.
스웨덴 엄마인 안나는 복직하기 한달 전에 인사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하였다. 원래 본인이 하고 있던 업무를 다른 사람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업무로 복귀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더 나은 업무를 할 수 있는 부서로 배치해 주었다고 했다. 휴직 후 이직하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회사의 방법이라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 이후에도 아이가 8세까지는 원래 근무시간의 85%까지 줄여서 일할 수 있다. 주 3일은 출근하고 주 2일은 재택근무를 하는 식으로 업무방법을 조정하여 육아 부담을 덜기도 한다. 회사일과 개인사의 균형을 이루는 직원을 최고의 직원으로 생각하고 고용주는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건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이다. 스웨덴은 1960년대부터 남성의 육아 참여 논쟁이 시작돼 사회적으로 남성의 육아 참여를 이끌어내고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기반을 마련하여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데리러 가면 스웨덴 아빠, 엄마 거의 같은 비율로 아이를 데리러 온다. 스웨덴 아빠들에게 육아는 아내를 도와주는 일이 아닌 그저 본인이 해야 할 일이다. 한국 여성들은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아이 낳기를 포기하거나 직장을 포기한다. 왜 한국 여성은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할까?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회사 경영층, 사회 지도층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남성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웨덴 엄마들에게 일하면서 스트레스받는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스웨덴 엄마들은 아이를 혼자 키우지 않는다. 아이는 가족이 함께 돌보고 직장에서 지원해주며 국가가 보호해준다.
*홍민정 씨, 경향신문 기고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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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끝자락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복지 선진국이자 엄마가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자주 평가되는 나라다. 노르웨이 엄마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는 과정 내내 모두 똑같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배려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
노르웨이에서는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무료이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출산 후 3일 이내에 퇴원을 한다. 그리고 퇴원한 다음날 지역 보건소에서 아이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집으로 방문한다. 간호사는 산모와 아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해당 가정의 환경이 육아에 적합한지를 확인한다. 또 앞으로 아이가 받게 될 건강 검진 및 예방 접종 스케줄, 신생아 육아 시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안내해 준다. 이렇듯 노르웨이에서는 부모가 예방 접종이나 건강 검진 일정을 챙길 필요가 없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로 보건소로 가기만 하면 된다. 보건소 이용을 포함한 병원 진료 등 아이들의 건강과 관련된 서비스는 모두 무료다.
담당 간호사는 엄마들이 육아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산후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상담하고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공감하겠지만 어린 아이를 혼자 집에서 돌보는 일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함께할 친구가 없었던 내게 담당 간호사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열린 유치원(Apen barnehage)’이다. 열린 유치원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가는 유치원이다. 주로 공립 유치원이나 학교의 여유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미리 등록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입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이용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열린 유치원에 가면 아이는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고,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 나누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열린 유치원에 가면 10개월쯤 된 아이들이 엄마가 아닌 아빠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육아휴직 할당제’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할당제는 100% 급여를 받으며 쓸 수 있는 총 49주의 육아 휴직 기간 중에 적어도 10주를 아빠가 휴직해야하는 제도다. 만약 아빠가 육아 휴직을 하지 않으면 이 기간은 소멸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빠들은 ‘육아 휴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평일 낮에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아빠들, 카페에 앉아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며 식은 커피를 마시는 아빠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처음엔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빠 혼자 아이들을 잘 챙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건 엄마들의 기우(杞憂)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아빠들은 일에서 벗어나 아이와 둘만 있게 되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또 육아도 잘 해내고 있었다.
노르웨이는 80% 이상의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고, 양성평등 의식 또한 높은 나라다. 그래서 건강한 젊은 여성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신 어린 자녀가 있는 엄마들은 시간제 정규직 제도를 많이 활용한다. 근무 시간을 줄여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 할 수도 있고, 한 주에 며칠만 출근하는 것으로 근무 형태를 바꿀 수도 있다. 노르웨이 직장 직원들은 대부분 워킹맘과 워킹대디인 것이다. 이때문에 노르웨이 직장에서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의를 하다가도 오후 4시가 되면 아이를 픽업해야하는 부모들은 양해를 구하고 일어난다. 아이가 아플 경우 부모 중에 한 명이 아이가 아플 때 쓸 수 있는 휴가를 내고 쉰다. 방학 기간에는 아예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기도 한다. 직장 동료들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준다.
남편도 매일 오후 4시쯤 퇴근해 첫째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이들과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을 보낸다. 노르웨이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지만 노르웨이도 낮은 출산율과 미흡한 양성평등 정책 때문에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정부가 적극 나서서 엄마와 아이를 최우선에 둔 복지 정책과 사회 제도를 만들었다. 40% 이상 여성 의원이 선출되도록 한 성별할당제와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강제한 법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엄마와 아이를 배려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와 지지가 큰 원동력이 되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노르웨이는 출산율, 양성평등 의식, 복지 및 사회 제도 등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육아 선진국이 되었다. 나는 노르웨이가 한국의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육아 선진국이 될 한국의 미래를 꿈꾸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엄마가 행복한 나라’가 곧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다.
*경향신문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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