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스스로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가?
뇌과학이 던지는 질문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리듬을 반복하는가?
예를 들면 남성편력, 여성편력이 많은 이들이 있다.
처음엔 실패할 수도 있다고 치자. 정말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면
두 번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은 두 번, 세 번, 아니
평생 동안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어디 연애만 그런가. 사업과 돈 문제도, 조직과
사람관계도 다 마찬가지다. 늘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하면서 또 그러고 또 그런다.
타인을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이런 패턴을 대관절 왜,
멈추지를 못하는 것일까? 뇌과학자들은 저 난감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선택의
순간에 뇌 안에서 일어나는 쾌락중추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어떻게 답할까?
아주 간단하다.
자승자박.
자업자득.
즉, 길이든 흉이든 결국은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도 자신의 내부에
단서나 원인이 없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운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동일한 욕망과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는 삶에 임하는
생각과 행동의 엇박, 이것이 바로 팔자다.
해서, 팔자를 고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단서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동양사상이 내적 성찰과 통찰의 힘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데, 이렇게 말하면
대개 억울해한다. '왜 나만 갖고 그래? 그게 왜 내 탓이야?' 혹은 '그러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야.
나를 그렇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지, 내가 뭔 죄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번 찬찬히 따져 보자. 이런 논리는 상당히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삶에서 나를 소외시키는 방식이 아닌가. 내 삶의 원인을 전부 바깥에 두게 되면
나의 삶을 조명하는 인생극장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격이다. 주변인물만 잔뜩 나오고 정작 나는 가끔
씩 카메오로 출현해서 투덜거리기만 하는 꼴이다. 참 볼썽사납지 않은가. 비극이든 희극이든 시트콤이든
사극이든 내 삶을 다룬다면 마땅히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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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막연하게 생각하는 운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동양의 명리학은 사주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입니다.
사주는 사람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고, 연월일시를 그 집을 받치는 네 개의 기둥,
즉 네 간지라 합니다. 각각의 간지가 두 글자로 되어 있어 모두 여덟 글자를 이루기 때문에
'팔자'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람의 운명을 사주팔자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간지 여덟 글자에 나타난 음양과 오행의 배합을 보고,
그 사람의 부귀와 빈천, 길흉, 화복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사주팔자로 알 수 있는 것은 성격이나
적성 등 인성 분야, 부모, 형제, 부부, 자식 등 대인 분야, 관운ㆍ재운ㆍ학운ㆍ건강 등 운수분야로
나눠집니다.
명리학에서의 사주팔자는 무엇보다도 균형과 조화를 중시합니다. 음양이나 오행이 치우침이 없이
고루 배합되어 있으면 길하고 편중되어 있으면 그것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해줘야 합니다.
연월일시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타고난 성향을 살펴 과한 부분은 지나치지 않도록 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해주는 것이지요.
그래야 행운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게 사주명리학의 이치입니다.
동양의 명리학과 서양의 점성술은 우주의 천문학적 현상과 인간의 세상사가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동양에서는 우주만물의 법칙인 음양과 오행이, 서양에서는 일곱 개 행성의 기운과 움직임이 동시성의
원리에 따라 인간사와 함께 움직인다는 원리가 놀랍게도 똑같습니다.
명리학은 우주만물을 움직이는 힘의 실체와 규칙이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도 하나의 소우주로서
그 축소판과 같다고 말합니다.
스위스 출신 심리학자인 칼 융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삶의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칼 융은 "무의식이 정하는 삶의 방향이 운명이다."라는 표현으로 우리 안에 운명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우리가 외부의 불가피한 영향으로 정의하는 운명조차 인간이 갖고 있는 무의식적인 사고패턴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행운을 불러온다는 것도 무의식의 힘을 긍정적으로 이용한다는 뜻입니다.
무의식의 힘을 우주의 에너지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우주의 에너지에 상응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무의식과 우주의 에너지를 깨워 행운을 불러들이는 방법은 기존의 성공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노력해서 쟁취하고, 처절하게 살아남는 것이 '성공방정식'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지요.
행운의 과학은 성공해서 행복하기보다는 행복해서 성공하기를 가르칩니다.
성공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요.
일을 해나가다 보면 반드시 당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사건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는 일이 나중에 원래의 목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행운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운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의 에너지이지만, 통제할 수 없다고 무연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간은 내면의 무의식과 우주만물의 법칙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다만 우주의 에너지를 불러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있음을 명심하세요.
그리고 에너지의 방향이 플러스일지 마이너스일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도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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