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좌에서 땅으로…사랑 실천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오는 14~18일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영적 지도자로서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다. 70대의 그는 즉위하자마자 파격적인 언행으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 언행 뒤에 감춰진 그의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의 메시지를 간과한 채 표피적인 화제가 넘치는 상황에서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지, 지금까지 그의 강론과 인터뷰, 문서, 그리고 그를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담긴 진면목을 살펴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교황에 즉위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세상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고, 경제지 <포천>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그를 꼽았다. 그의 무엇에 세상이 이처럼 열광할까.
우선 그는 지금까지 교황들이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는 낮은 곳으로 내려왔지만, 교황들은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렸다. 교회적으로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서 인간의 땅으로 내려왔지만, 로마 교황이 권좌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데는 2천년이 걸렸다. 프란치스코는 2천년 만에 권좌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온 교황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대우받을 수 있는 이가 낮은 곳에 내려와 섬기기를 즐기면 더욱 높아지는 것이 세상의 아이러니다. 프란치스코 신드롬이 이를 말해준다. 바티칸에 모여드는 관광객은 전임 교황 때에 비해 3배나 늘었다. 가톨릭의 냉담자는 급격히 줄고, 신자가 늘고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의 행동이다. 그도 전임 교황들 못지않은 노인이지만 그는 주로 권좌에 앉아 있는 기존 교황들과는 달리 걷고 행동한다.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역시 행동이다. 교회를 야전병원으로 규정한 그는 “쓰러져 피 흘리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 수치 따위를 묻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교회 밖으로 나가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것을 촉구했다.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솔선수범이다. 그가 교황이 되자마자 세계의 거물들이 그를 만나고 싶어했지만, 그는 로마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고 만났다.
세속적으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교황이 낮은 곳에 있는 약자들의 곁으로 다가와준 것이다.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핍박받고, 찢겨 고통받는 약자들에게 어머니처럼 두 팔 벌려 안아준 것이다.
더구나 그가 인도주의적 선행만으로 그치지 않고 세상의 구조적 악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지성과 양심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브라질 빈민의 대부 에우데르 페소아 카마라 대주교가 “내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성자로 불리지만, 그들이 가난한 이유를 물으면 공산주의자로 불린다”고 말했듯이 지금까지 구조적 불평등 시스템을 지적하면 우익들로부터 여지없이 빨갱이 사냥을 당하곤 했다. 남미의 수많은 해방신학자들도 그런 공격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도 가난한 사람을 돕는 모습은 연출할지언정 구조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삼가왔다. 그런데 12억 신자를 둔 가장 막강한 종교의 수장이 강자들만의 리그를 바꾸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세계 거물들 대신 소외된 이들 만나
바티칸 관광객, 전임때의 3배 ‘인기’
인도주의 선행 그치지 않고
‘구조적 악’ 바꾸는데 적극적
가톨릭 개혁 이끌지 주목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적 현안에 대한 분별력과 정치적 감각으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줄 만큼 멘토로서 실력을 지니고 있다. 세상과 어떻게 소통할지를 아는 감도 탁월하다. 스타로서 자질을 타고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다른 달라이 라마나 틱낫한에게서 삶의 조언을 구했던 가톨릭 신자들이 이제 가톨릭 안에서 멘토를 찾을 수 있는 일치를 이루게 됐다. 더구나 그는 사랑이나 평화, 화해라는 하나 마나 한 관념적인 언어를 동원해 현실을 회피하게 하는 대신 현실을 직면하며, 이를 타개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드문 종교지도자의 면모다.
가톨릭 내엔 프란치스코 수도회 재산이 얼마인지, 예수회원의 진짜 생각이 뭔지는 하느님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는 한국 못지않은 적나라한 좌우대립, 페론 좌익정권의 인기영합주의, 우익 독재자들의 인권유린과 학살이 난무한 아르헨티나의 상황에서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은인자중해온 진짜 예수회원이다. 독재 정권에서 수많은 사제 수도자들이 탄압을 받을 때 그가 이를 방조했다는 논란도 있다. 그러나 그는 행동하지 못한 과거에 대해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참회했고, 그 이후 더욱 용기있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어간다는 세태를 역류하고 있다.
그것이 가톨릭 내적으로도 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의 개혁정신을 되살려줄 인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신·구교의 분리 뒤 가톨릭의 개혁을 이끌어 위기를 돌파한 예수회의 개혁성, 또 최초의 비유럽 출신 교황인 그가 과연 제3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해 미완의 교회개혁을 이끌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선교에도 상당한 열의를 내보이는 그가 인기를 활용해 가톨릭의 세력 확장을 모색할지, 아니면 지금까지 언행대로 부정의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책임감을 지속해줄지 단정하기에 1년6개월은 짧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번째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명확히 언급한 대로, 정치와 경제를 망라하고 부정의한 소수 권력의 부도덕을 간파하고 개혁하려는 의지를 공언한 것은 틀림없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무신론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을 시대적 과제로 삼았다면, 그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세계의 새로운 해악으로 떠오른 신자유주의의 경제 불평등을 개혁 과제로 꼽고 있다. 그는 돈만을 숭배하며, 인간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체제를 질타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아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자포자기한 채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구약의 선지자나 혁명가와 같이 용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 사제, 수도자와 신자들만이 아니라 세계가 좌고우면에서 벗어나 정의를 위해 더 담대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뒷심이 되어주고 있다.
<한겨레 신문 기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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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은 왜 금융업에 뛰어들었을까?
바티칸 은행의 공식 명칭은 종교사업기구로 가톨릭 해외 교회와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기구이다. 그 역사는 이러하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바티칸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종교개혁 이후 신자 수는 줄어들고 헌금은 감소하는데 시대에 발맞춘 구조조정에도 실패하고 혁신적인 대책을 마련치 못했다. 개신교의 확대로 가톨릭 국가들이 보내주던 헌금도 끊기기 시작하고, 각 나라에서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던 많은 부동산들이 국유화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그 결과 겨울에 난방을 못할 만큼 가난했고 비가 새도 지붕 고칠 돈이 없었다.
이때 대전환을 노려 기획한 사업이 오토만 제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3.1운동이 있던 1919년 교황 베네딕토 15세 때 일이다). 그러나 오토만 제국은 무너졌고 교황청도 덩달아 파산 위기에 놓였다. 이 손실에 대해 교황청은 오토만 제국을 무너뜨린 이탈리아에 일시불로 배상금을 요구했는데 그 대상자는 파시즘을 이끌던 무솔리니였다. 무솔리니는 교황청 땅이 이탈리아 국가 소유로 넘어온 것도 있고 공산당 등 정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교황청이란 배경이 필요하니 이를 수락했다. 그래서 거액의 보상금과 면세를 제공한다. 이것이 1929년의 라테란 조약이고 교황 비오 11세 때 일이다.
교황청은 히틀러에게도 손을 내밀어 1년에 1억 달러씩 받았고 히틀러는 대신 국민에게서 교회세를 거뒀다. 다시는 굶주리고 싶지 않았기에 교황청은 '특별행정처'라는 직속기구를 설립해 독재자들로부터 들어온 돈 등을 글로벌 투자를 통해 불리고자 했다. 이것이 바티칸 은행의 전신이다.
바티칸 은행의 흑역사
처음엔 자금 운용과 투자결정에 교황청 간부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성직자들이 금융 사업에 나서는 것도 부적절해 보이고, 종교적 판단이 개입하면 수익사업을 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접근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다 특별행정처의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결국 바티칸은행이 되었다. 스위스은행과 손을 잡았고 스위스 은행과 연결되자 이탈리아 기업인들의 비자금이 바티칸 은행을 통해 빠져 나갔다. 그리고 마피아도 마약 거래 자금을 숨기기 위해 바티칸 은행에 돈을 넣었고 이 돈은 바티칸 글로벌 루트를 따라 지구촌을 넘나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쥐구멍 라인(rat line)'이라는 사업도 있었다 한다. 마피아와 바티칸이 협력해 나치 전범을 아르헨티나 등으로 피신시키는 사업이었다. '리용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 생체 실험을 진행한 요제프 멩겔레 등이 이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피아는 위조여권과 탈출 계획을 준비하고 바티칸이 은신처를 제공했는데 나치 전범들 재산의 40~50%가 수고비로 헌납됐다는 것.
당신의 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이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려던 교황과 사제들이 있었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지만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하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의지가 강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양을 치는 목자가 몸에서 자신이 기르는 양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게 양치기 목자일 수 있는가…". 이 말대로라면 돈 냄새 짙은 성직자들은 이제 옷을 갈아입든 나가든 해야 한다.
최근 로마의 성 그레고리오 7세 성당에서는 미사 도중 842명의 이름이 불리어졌다. 이 842명은 1893년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었다. 이 가운데 82명은 어린이들이다. 이 미사는 반(反)마피아 시민단체인 '리베라(Libera)'가 주관한 미사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했다. (교황이 반마피아 단체의 미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마피아는 회개하고 악행을 멈추기 바랍니다. 더러운 범죄로 모은 권력과 돈에는 피가 묻어 있고 그 돈은 천국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부패와 싸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합시다"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우리는 마피아 대부분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임을 간과할 수 없다. 바티칸 은행과 마피아의 관계도 교회와 신도의 관계를 밑에 깔고 있는 셈이다. 교황청의 이 같은 쇄신 노력을 한국 교회는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교인이면 뭐든 밀어줘야 한다는 맹목적 태도를 그대로 가져가서는 미래가 없다. 장로니까 대통령 시키고, 흠결이 있어도 장관, 국무총리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벌인 일이니 뭐든 적당히 덮어주고 넘어가는 것이 교회의 도리가 아니다. 교회가 먼저 더 아프게 꾸짖고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일을 가벼이 여긴다면 한국 교회는 비가 새도 지붕을 고칠 수 없는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노컷뉴스 기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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