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리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면화의 원산지 인도, 11월 초 인도 남부는 수확 철을 맞았다.
전체 경작지의 20퍼센트가 면화밭인 비다르바 지역은 면화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곳에 농민들의 자살이 속출하고 있다.
면화 농사를 짓던 아그라왈 씨의 남편은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면화 씨앗을 사다 쓰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불어난 부채 때문이었다."
-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2011년 2월 27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의 도입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동시에 안겨주며 큰 화제가 되었다. 초국적 종자기업 몬산토의 BT면화가 인도에 도입된 이후 지난 10년간 20만 명에 이르는 인도 농민이 자살했다. 평균 30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식량 자급률이 30퍼센트도 안 되는 우리나라는 이미 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농산물을 초국적 종자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큐멘터리는 수만 년 동안 농민의 것이었던 종자가 최근 100년도 안 되는 동안 초국적 종자기업에 의해 사유화되는 과정과 그에 따른 문제를 짚어보고, 종자전쟁 시대에 토종 종자를 지키고자 국내외에서 펼쳐지는 여러 움직임을 소개하며 바람직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책으로 더 깊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종자 전쟁’
방송 이후 3년, 초국적 기업의 종자 지배 현상은 흔들림이 없고, 종자를 둘러싼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취재는 됐으나 시간 제약상 방송되지 못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문헌 자료, 사진 등 KBS 스페셜 제작진이 축적한 방대한 분량의 취재물들을 재구성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의 내용을 더 깊고 자세하게 풀어 쓰고, 최근의 정보를 풍부하게 추가했다. 초국적 기업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여러 도표를 실어 이해를 도왔다.
- 출간을 기념하여 우보농장과 함께 ‘토종 종자 나누기’ 캠페인이 5월 한 달간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시대의창 블로그 참조.
종자는 누구의 것인가
옛말에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를 베고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먹어 없애지 않는다고 했다. 종자는 농사의 출발이고, 이것은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수천 년을 면면히 지켜온 불문율 같은 것이다.
세계 식량 위기가 회자될 때마다, 새로운 무역협정이 조인될 때마다 ‘농업’을 살리자는 말들을 한다. 그사이 농업은 점차 산업화 과정을 겪어왔다. 또한 몇몇 초국적 기업이 개발한 특정 품종의 종자가 농민과 농업을 잠식해왔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의 다양한 민족들이 대대손손 개량해오던 수많은 토종 종자 대신 종자기업의 종자가 세계 논밭을 장악해가고 있다.
종자 전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벌어진다. 하나는 종자를 차지하기 위해 자본과 자본, 기업과 기업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수 자본이 독점한 종자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되찾아오려는 시민과 농민이 자본과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 곧 ‘종자 독점’ 대 ‘종자 주권’의 전쟁이다. 전자의 전쟁은 결국 후자로 귀결된다. 씨앗은 기업이 ‘개발’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가,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 인류 공동의 유산인가.
농업의 산업화 그리고 단작화
예로부터 농사는 땅과 하늘, 그리고 사람이 짓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녹색혁명과 산업화는 기계와 기술이 농사를 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농업이란 바로 땅과 하늘의 힘을 인간의 기술로 모두 해결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산업화된 농업에서 농산물은 상품일 뿐이기 때문에, 국내 생산 비용이 높거나 수요가 적어 수익을 낼 수 없는 작물은 생산을 포기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해버리고, 빨리 재배해서 바로 팔 수 있는 품목과 품종에 생산이 집중된다. 그리고 농민도 여러 작물을 재배하기보다 잘 팔리는 몇몇 작물을 집중해서 재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 때문에 한 가지 작물을 집중해서 재배하는 ‘단작화monoculture’ 방식으로 농업 형태가 변화했다. 결국 녹색혁명은 농업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고, 몬산토, 카길, 신젠타 등의 초국적 기업은 단작화를 가속시켰고, 종자는 산업화한 농업에서 제품 생산을 위한 원료로 전락했다.
종자도 팔고 농약도 팔고, 종자기업이 추구하는 이윤 극대화의 그림자
초국적 종자기업은 종자뿐만 아니라 농업 전체를 장악해가고 있다. 대부분 농화학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서 농약에 맞춰 유전자 조작으로 종자를 개발해 농약도 팔고 종자도 판다. 미국의 대평원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내다 팔려면 카길 같은 기업의 ‘곡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한다. 몬산토는 아르헨티나 농민들에게 자사 종자와 농약을 살 수 있도록 대출도 해준다. 그들은 농민에게 GMO(유전자 조작) 종자와 부채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더구나 기업의 종자 독점은 식량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리어 특정한 식량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수확이 보장된 일부 작물만 재배하다 보니 농산물 시장에서 그 작물의 가격은 크게 떨어진다.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한 농민은 자살을 택하거나 굶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 세계 기아 인구의 4분의 3이 농촌에 거주한다는 역설적인 현실에 직면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리는 것이다. 지천에 먹을 것이 깔려 있던 과거 ‘농촌’의 모습은 사라져간다.
많은 학자들은 이와 같이 종자기업이 내놓는 상품성 작물만 재배되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 종자 기업은 품종을 단순화시켜 개발 비용과 관리 비용을 줄여 이익을 키우려 할 것이다. 많은 품종을 팔기보다 몇 가지 품종을 많이 파는 것이 낫다. 그런데 만약 질병으로 그 몇 가지 품종이 전멸한다면? 그래서 학자들은 ‘종의 단순화’가 식량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두고 뭉친 기업과 정부
전 세계 생물 유전자원의 90퍼센트는 제3세계 국가들에 있는 반면, 이 생물 유전자원에 대한 기술 특허는 상당수가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에 있다. 전 세계에서 수집된 유전자원은 기업이 발명한 종자로 둔갑하여 전 세계 농민들에게 팔린다.
그리고 각국 정부들이 이들 기업의 뒤를 밀어준다. 미국에서 종자 산업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종자 개발의 타당성을 옹호하는 기초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상용화에 중점을 둔 기업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합작 투자, 연구 제휴, 대학 연구기금 지원 등의 방법을 통해 종자 관련 연구에 관여하거나 연구를 직접 통제한다. 몬산토는 2000년 10월 6일 자 [사내 소식지Monsanto Inhouse Newsleter]에서 다음과 같이 장담했다. "11월 선거에 어떤 후보가 승리하든, 농업생명공학 산업은 내년에 백악관 주인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종자는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이다. 1929~1932년 미국의 도셋Dorsett과 모스Morse가 이끈 본격적인 첫 콩 원정대(정식 명칭은 동양농업탐사원정대Oriental Agricultural Exploration Expedition)는 우리나라(조선)에서만 약 3500점(전체의 약 76퍼센트)을 수집해갔다. 미국이 현재 보유한 콩 유전자원 1만 8905점의 18.8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들이 모은 종자는 미국 대두 산업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먹는 것, 곡식이든 채소든 고기든, 그것은 씨앗으로부터 출발한다. 씨앗은 곧 식량이다. 즉 종자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종자를 둘러싼 기업과 기업의 전쟁, 농민과 기업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농민과 우리 먹거리 생산과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일벼’, ‘녹색혁명’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본다.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의 ‘식량주권운동’과 우리나라에서 최근 움직임이 커진 ‘토종 종자’를 지켜 나가려는 운동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농부였던 아버지는 해마다 수확한 곡식 중에 일부를 골라 창고에 따로 저장하셨는데, 이듬해 햇살이 따뜻해지면 어김없이 그 씨앗으로 파종 준비를 하셨다. 물과 소독약이 적당히 섞여 있는 커다란 고무 대야에 씨앗을 한가득 붓고서는 온도계로 일일이 온도를 맞춰가며 파종할 씨앗을 애지중지 살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방법은 그때와 많이 달랐겠지만, 수천 년 전부터 농민들은 해마다 그렇게 좋은 종자를 선발해왔고, 그 농민들의 노고에 힘입어 우리는 건강하고 좋은 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40여 년 만에 현실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해마다 봄이면 농민들은 종자기업들이 생산한 씨앗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달려간다. 자신이 키운 씨앗이 아니기에, 좋은 씨앗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돈을 주고 산다. 사는 것 외에 씨앗을 구할 방법은 없다. 농민들에게 씨앗이 없기 때문이다. 농민의 씨앗은 40여 년 사이에 거의 다 사라졌다. 무엇이, 누가, 농민의 씨앗을 빼앗아 간 것일까? 어떻게? 農夫餓死枕厥種子(굶어 죽더라도 농민은 그 종자를 베고 죽는다)라 했는데 말이다.
('출판에 부쳐' 중에서/ p.5)
학자들은 오늘날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에 의한 종자 지배가 장래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윤을 좇는 기업의 특성상, 종자기업은 많은 종류의 종자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수천 가지 옥수수 품종 중에 A 품종 계열의 종자가 상품성이 좋다고 판단되면, 종자기업은 다양한 품종의 옥수수를 내놓기보단 A 품종 계열만을 판매하고자 할 것이다. 품종이 단순해질수록 개발 비용이나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기에, 종자기업에겐 그만큼 더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많은 양을 파는 것이 중요하지, 많은 품종을 내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종의 단순화’가 초래되는 것이다.
('출판에 부쳐' 중에서/ pp.7~8)
라운드업레디 대두는 직접 파종하면 된다. 땅을 먼저 갈 필요도 없다. 지난해 수확을 마친 경작지에 곧바로 씨를 뿌리면 된다. 잡초를 없애는 제초제를 네다섯 가지 뿌려야 했지만 라운드업레디 대두에는 라운드업이라는 제초제만 두 차례 살포하면 된다. 라운드업은 라운드업레디 대두만 남겨놓고 모든 식물을 죽인다고 했다. 파종의 편리함과 농약 비용 절감이 집중적으로 홍보되었기 때문에 라운드업레디 대두의 재배 면적이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
특정 제초제와 이 제초제로는 죽지 않는 제초제 저항성 GMO를 함께 도입하면 제초제 사용량이 줄어든다는 것이 애초의 약속이었다. 라운드업레디 대두를 도입하기 전에는 네다섯 가지 제초제를 번갈아 사용해 잡초에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라운드업레디 대두에 맞는 라운드업만 사용하자 여기에 내성을 갖는 잡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제초제 사용량이 더 늘어나 매년 100만 리터 정도였던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계열 제초제 사용량이 2005년 1억 5000만 리터로 급증했다.
(/ pp.33~34)
유전자 침식genetic erosion이란 토양 침식에 빗대어 유전자원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2009년 농촌진흥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재래종 작물의 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해 [식량농업 식물유전자원 국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식물 유전자원이 사라져가는 유전자 침식을 조사해보니 고추, 수수, 기장 등은 더 이상 재래종이 재배되지 않았고, 조사한 작물 중 평균 26퍼센트만이 재래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재배돼온 종자의 74퍼센트를 잃어버린 셈이다.
(/ p.49)
국내 농민들이 외국 기업에 지불하는 특허사용료 비용은 2005년 183억여 원, 2010년 218억여 원에 달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이후 10년간 특허사용료 지급액은 79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특허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6개 품목의 외국산 종자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딸기의 경우 국내산 종자 사용 비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꽤 성공을 거두어 2005년에 채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던 국내산 종자 사용 비율이 최근 61퍼센트대로 높아졌다. 하지만 포도(98퍼센트), 표고버섯(60퍼센트), 장미(82퍼센트), 카네이션(99.8퍼센트) 등 인기 작물의 종자는 여전히 외국산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농림식품부는 2012년부터 10년 동안 총 8149억 원을 투자하여 2020년까지 종자에 관한 역량을 강화하고 2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겠다는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종자산업 육성을 통해 종자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10년간 투입되는 8149억 원이라는 예산은 실제 초국적 종자기업 몬산토의 1년 치 연구비보다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 pp.57~58)
2011년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2.6퍼센트였다. 곡물 자급률은 식량 자급률을 대표하는 지표다. 보조적 지표로 식용 곡물 자급률과 칼로리 자급률이 있다. 식용 곡물 자급률은 사료용 소비를 제외하고 사람이 직접 식용하는 곡물의 소비와 생산만 계산한 것인데, 사료용 곡물은 가축이 먹지만 결국 그 가축을 사람이 식용하기 때문에 식용 곡물 자급률은 식량 자급률을 표시하기에 불충분한 지표다. 칼로리 자급률은 육류와 과일?채소류 등 농산물 일반을 모두 포괄하기 위해 고안된 계산법으로, 국내 열량 총 소비량을 분모로 하고 국내에서 생산하여 공급하는 열량 공급량을 분자로 하여 계산한다. 이 방법 역시 국내산 축산물이 공급하는 에너지 열량의 원천이 수입산 곡물에 있는 경우 자급률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2011년 기준 한국의 식용 곡물 자급률은 약 44.5퍼센트, 칼로리 자급률은 약 40.2퍼센트다.
(/ p.68)
이것은 ‘멘델의 유전 법칙’ 때문이다. 우성 유전자 RR과 열성 유전자 rr을 교배하면 Rr이 나오는데 Rr은 우열의 법칙에 따라 우성 형질만 나타낸다. 예를 들어 동그란 완두콩의 동그란 형질(우성) 유전자를 R, 주름진 완두콩의 주름진 형질(열성) 유전자를 r이라고 할 때, 동그란 완두콩 순종 RR과 주름진 완두콩 순종 rr을 교배해 얻은 잡종 1세대 Rr은 모두 동그란 완두콩이다. 그런데 잡종 1세대 Rr끼리 교배하면 2세대에는 RR, Rr, Rr, rr이 나온다. 곧 동그란 완두콩(RR, Rr, Rr)도 나오고 주름진 완두콩(rr)도 나온다. 곧 농민이 처음 기업에서 구매한 종자는 잡종 1세대라 수확량이 많고 우성 형질을 나타내지만, 그것을 수확해 얻은 씨앗은 잡종 2세대로서 수확량이나 품질이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 p.80)
산업형 농업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료와 농약은 주로 석유화학 물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생산 단계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한편, 땅에 뿌려져 토양 내 미생물을 파괴함으로써 탄소를 품을 수 있는 토양의 능력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농기계는 석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또, 농산물을 포장하고 소비지까지 운송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대기 중의 탄소량을 줄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온 농업이 도리어 탄소 배출의 주범이 되어버린 실정이다.
(/ p.98)
농식품 체계agrifood system란 먹거리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체계를 뜻한다. 과거에는 주로 지역 내 소비를 위해서 소규모로 생산되고 유통되던 먹거리가 이제 계절과 관계없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생산되며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오늘날의 농식품 체계를 세계농식품체계global agrifood system라고 한다. 전 지구적인 생산과 전 지구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는 체계다.
(/ p.106)
GMO를 개발하는 과학자들과 기업의 논리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유전자 지도를 통해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자신들이, 조작된 생명체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과연 식물인가 혹은 동물인가, 아니면 공산품과 같은 실험실의 발명품인가를 두고 사회적, 철학적, 그리고 윤리적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유전자의 발현은 유동적이고,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방법을 거친다 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반드시 예측한 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일단 실험자가 원하는 위치에 DNA가 정확히 삽입되기 어렵다. 또한 삽입된 DNA와 주위 유전자가 서로 예기치 않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설사 안전성 검사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불안전한 유전자 구조 때문에 세대를 거듭하면서 그 성질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GMO를 프랑켄푸드Frankenfood라고 부른다.
(/ pp.131~132)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으로 GMO 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아직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GMO 안전지대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2001년부터 시행된 GMO 표시제는, GMO 농산물이 원료로 들어간 식품에 GMO를 원료로 썼음을 표시해서 판매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그런데 GMO 성분 함유량이 3퍼센트 이하인 경우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면제 기준이 있어, 지금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식품에 GMO가 표시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 p.163)
"(종자에 대한 특허는) 창조와 혁신이라는 미명으로 행해지는 도둑질이다. 그뿐만 아니라 훔친 지식에 기반을 둔 배타적 권리는 생물다양성과 인류의 일상적 생존 기회들을 도둑질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허권은 독점을 만들어내고, 일상의 생산물 가격을 높이는 데 이용될 수 있다." - 반 다 나 시바/인도 생태환경운동가
(/ p.187)
종자 독점은 농업의 산업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져왔다. 농민들이 재배하는 작물은 거대 기업이 판매하는 몇 가지 품종에 한정되었고, 해당 품종을 재배하려면 농기계를 더 많이 사용하고 그 종자에 맞는 농약과 비료를 더 많이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면 더 높은 생산성을 올리기 때문에 농민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종자기업들은 선전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소비자들이 지출한 농산물 가격 가운데 농가의 몫으로 돌아가는 비중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1910년대에는 농가의 몫이 약 40퍼센트였으나, 1990년대에는 약 7퍼센트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종자, 농기계, 농약, 비료 등 농자재 기업의 몫으로 돌아간 비중은 약 18퍼센트에서 약 37퍼센트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맺음말' 중에서/ pp.295~296)
거대 자본은 우수한 종자와 화학 농업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때문에 지구촌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결과를 보여준다. FAO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엔 지구촌 기아 인구가 약 8억 5000만 명이었는데, 2000년대 후반에는 약 10억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화학 농법이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수많은 소농과 가족농이 농사를 포기하고 소수 기업농에 농업 생산이 집중되면서 식량 생산량이 소비 증가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농업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식량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식량 위기에 따른 식품 가격의 폭등은 종자와 먹거리를 지배하는 거대 자본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었다. 종자와 먹거리를 지배하는 소수 자본에게 식량 위기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과 권력을 가져다주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것이다. ‘종자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 거대 초국적 자본들이 독점의 촘촘한 그물망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맺음말' 중에서/ p.297)
<출판사 책소개글에서 가져옴>
(KBS프로그램에서 영상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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