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만든 SF 영화, 액션 영화, 서부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깨지지 않는 불문율은 '해피 엔딩의 나라' 할리우드에서만 통하는 법칙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들을 모두 쳐부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개런티를 많이 준 주인공을
영화 중간에 죽일 수 없기 때문일까? 주인공을 좋아하는 관객들을 위한 '제작자의 배려'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문제에 관해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20세기 초는 고전물리학의 껍질을 뚫고
새로운 양자물리학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그 '반란'의 중심지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자리한 이론물리학
연구소였다. 그곳에서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하이젠베르크나 페르미, 가모브같은 훗날 위대한 물리학자
가 될 젊은이들이 모여서 '미시 세계를 기술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양자역학의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했다.
코펜하겐의 젊은 물리학자들과 보어는 금요일 저녁이면 함께 영화를 보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들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 영화 한편을 보게 됐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들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점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왜 주인공은 언제나 악당들을 물리치고 이기는가' 하는
문제였다. 게다가 악당들은 대개 주인공의 등뒤에서 기습을 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이 황당한 문제를
풀기 위해 장난기 어린 '가설' 하나를 세웠다.
"의식적인 기습보다 무의식적인 반응의 속도가 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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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과학자답게 이 재미있는 가설을 검증해 보기로 마음먹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실험을 했다.
시가를 멋지게 피우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는 주인공 역은 보어가 맡고, 호시탐탐 주인공을 해치우기
위해 기습을 노리는 악당 역을 가모브가 맡았다. 결투 장소는 북유럽의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보어의
연구실! 소품은 권총 대신 물총 한 자루씩!
연구실에서 가모브가 보어를 갑자기 기습했을 때 과연 누가 먼저 물총을 뽑아서 쐈느냐가 실험의 내용이
었다. 결과는 주인공 보어의 승리! 역시 주인공은 현실에서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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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을 통해 그들은
'자유의지는 결코 반사신경을 앞지를 수 없다'
는 엄청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깨달았을 것이다. 죽이려고 하는 자가 먼저 죽는다는
삶의 진실을. 이 일화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준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영화를 보며 진지
하게 토론하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까지 하는 그날의 광경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모든 일에
진지하고, 창조적이며, 적극적인 그들이 있었기에 20세기 최고의 학문인 '양자역학'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재승 저, <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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