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경인데.." 침묵한 청와대 공무원들, 왜?
[전 靑 직원들 "정상적 업무 불가능할 것"… 조직이론 전문가 "내부 문제 침묵, 우리나라서 강해"]
"나 같으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자기 업무가 마비된 상태에서 어떻게 자리를 지키고 있나."
전 청와대 보좌진으로 일했던 A씨는 최근 밝혀진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 보좌진으로 청와대에서 2년 넘게 근무했다. A씨는 "물론 대통령의 뜻과 의도를 명확하게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지경까지 왔다면 실무진들의 업무가 거의 마비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심각해질 때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면 조직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있다.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과 담화문 등이 사전에 최씨에게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의 국정개입 논란은 현실화됐다. 한국 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정치에 대한 불신도 커져가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직원만 수백명,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사태를 막지 못했다.
또 다른 청와대 출신 보좌관은 "대변인이나 홍보수석은 수시로 대통령과 만나 논의하는 게 현 정부 이전까지의 일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 정권에서는 대변인의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대통령과 직접적인 상의나 논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심 비서진들이 국정에서 배제됐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나왔지만 4년 동안 청와대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왜 그동안 '침묵'했을까. 전문가들은 조직의 문제를 회피하고 '나만 피해를 보면 되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예라고도 분석한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내부자와 외부자를 철저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며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제기한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구조가 보편적이다 보니 조직의 자정작용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엘리트 집단일수록, 조직의 이익이 클수록 더 커진다. 신 교수는 "조직의 영향력과 개인의 이익이 큰 집단일수록 그 집단 내부자 고발을 꺼려 한다"며 "위계적 특성이 강한 학계, 법조계, 언론계 등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조직의 유지 기간이 한시적이고 명예가 높을수록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봤다. 신 교수는 "조직이 나에게 높은 지위를 주고, 그 조직의 기간이 지속적이지 않다면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조직의 문제를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한 국회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직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내부조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보단 조직을 잘 지키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 내부 문제에 대한 침묵은 속을 곪게 하고 외부 자극에 의해 터지게 돼 결국 조직원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게 문제다.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 외에도 최근 벌어진 롯데사태, 잇따라 밝혀진 검사 비리,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등도 비슷한 예다. 수장의 잘못된 선택, 조직의 문제을 막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조직원에게 온 것이다.
한 경영학과 조직이론 전문가는 "조직의 침묵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우리나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군대문화, 위계질서 등이 결합돼 내부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불이익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강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하지만 이럴 경우 단기간에는 자신에게 보상이 따를 수 있지만 조직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개인이 생각하는 조직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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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선임기자
저는 요즘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선임기자라는 직함에서 짐작하시겠지만 제 ‘연식’이 제법 됐습니다. 현장기자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입니다. 그런데도 2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과 함께 취재 일선에 나선 건 <티브이(TV)조선>이 안겨준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한달 전쯤입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소재로 칼럼을 하나 쓰려고 몇 군데 전화를 돌렸습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괜히 헛다리 긁지 말아요. 우병우가 아니라 미르 재단이 본질입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미르 재단이 뭐죠?” “허허, 기자 맞아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조선이 이미 자세하게 보도를 했더군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여당 성향의 조선도 이토록 치열한데 난 뭐 하고 있었나, 선임기자랍시고 뒷짐 진 채 거들먹거리기나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편집국장에게 취재팀을 꾸리자고 요청한 겁니다. 천하의 게으름뱅이인 제가 말이죠.
취재를 하면 할수록 조선의 보도가 훌륭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취재 그물은 호수를 다 덮도록 넓게 쳤는데도 그물코는 피라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 없이 촘촘했습니다. 7월27일이 첫 보도인데 이미 4월부터 취재에 들어갔더군요. 재단의 어느 관계자는 저희 기자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조선 기자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달라붙었으면 그랬겠습니까.
다행히도 조선의 손때가 덜 탄 곳이 있었습니다. 케이스포츠입니다. 미르는 조선이 싸그리 훑고 지나가 이삭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는데 케이스포츠에는 그나마 저희 몫이 조금은 남아 있었습니다. 최순실입니다. 저희가 케이스포츠 현장에서 찾아낸 최순실의 발자국과 지문은 어쩌면 조선이 남겨놓은 ‘까치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이런 말을 했다죠.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감히 뉴턴 행세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한겨레가 한발짝 더 내디딜 수 있었던 건 조선의 선행 보도가 거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선이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송희영 주필 사건 이후 처신하기가 어려워졌겠죠. 게다가 내년 3월에는 종편 재허가를 받아야 하니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건 조선이 취재해 놓고 내보내지 못한 내용입니다. 저희가 조선의 뒤를 좇다보니 ‘잃어버린 고리’가 두세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건의 전체 모자이크를 끼워맞출 수 있는 ‘결정타’들이죠. 조선이 물증을 확보한 듯한데 보도는 실종됐습니다. 기사는 언제 햇빛을 보게 될까요.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힘 빠졌을 때라면 가치가 있을까요? 사장님은 기자들 수백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깥 사람들을 만나서 틈만 나면 기자들 자랑을 해대는 통에 “자식 자랑 하면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죠. 그렇게 아끼는 기자들의 땀방울이 어느 캐비닛에 처박힌 채 증발돼가고 있습니다.
기자 개개인보다는 조선의 이름값이 더 중요하겠죠. 사장님은 몇 년 전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저녁을 사면서 이런 건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 언론이 이념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념 위에 언론이 있다.” 폭탄주는 끊으셨기에 알잔은 맹물로 채웠지만 건배사 내용만큼은 100% 원액처럼 진했다고 하더군요. 사장님은 젊은 시절 방갑중이라는 이름의 성실한 외신부 기자였고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고도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당당할 때 권력도 감히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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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는 ‘회장님’으로 불렸다. 최 회장님도 아닌 그냥 회장님이다. 재벌 회장들이 그리 불린다. 그러고 보니 진짜 재벌 회장님 같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렸다. 스포츠, 부동산, 커피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더니, 대통령 옷을 제조해 청와대에 독점 납품하는 의류업에까지 진출했음이 밝혀졌다. 해외로도 진출해 독일에서는 비덱스포츠 등 회사를 14개나 세웠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규모는 작아도 수익률이 높으니 삼성, 현대의 웬만한 계열사 부럽지 않다.
‘순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는 ㈜청와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차명으로 은닉해놓은 지분이 많으니 회장님이 지배주주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고위직 공무원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청와대를 수익모델로 삼았다”고 표현했다. 요즘 드러나는 걸 보면 과장만은 아니다.
㈜청와대는 이건희 회장도 정몽구 회장도 가져보지 못한 계열사다. 그러니 다른 회장님들은 다 허깨비다. 진짜 회장님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몇백억원씩 상납했다. 그렇게 해서 차린 계열사가 ㈜미르고 ㈜케이스포츠다. 회장님 위의 회장님이고 ‘왕중왕’이다.
그런 회장님이 청와대 안종범 수석을 부르는 호칭이 ‘안 선생’이다. 기분 좋으면 ‘안 선생님’이다. 회장님이 그리 부르니 주변 사람들도 쉬이 보고 그리 불렀다. 어떤 이는 7월11일 ‘안종범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이의 휴대전화에는 아예 ‘안 선생’으로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취재 과정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거다.
왜 그리 불렀을까? 나이가 두어살 아래이니 경로사상이 발동한 건 아닐 게다. 아마도 수석이란 명칭이 껄끄러웠지 싶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수석님’이라고 부르며 사적인 심부름을 시킨다면 회장님인들 맘이 편하겠나. 더군다나 수석이라는 말에는 우두머리란 의미가 담겨 있다.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된 명칭이다. 하지만 회장님이 보기에는 그저 계열사의 한 직원일 뿐이다. 그렇다고 ‘안 전무’나 ‘안 상무’로 부르기에는 남들 눈총이 따갑다. 그래서 내린 답이 ‘안 선생’이다.
안종범 수석은 국감에 나와서 회장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지면의 1면을 보시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겨레>는 안 수석의 거짓말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낼 것이다. 안 수석도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겨레>가 취재한 바로는 ‘안 선생’은 회장님의 뜻을 성심성의껏 받드는 충직한 직원이었다. 누구를 만나라면 만나고 어디를 가라면 갔다. 심지어 점심 약속을 두 탕 뛰면서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회장님의 지시사항이 우선이니 경제수석에서 정책조정수석으로 이어지는 청와대의 공직은 뒷전이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안 수석은 존재감이 없단다. 경제부처의 국장, 과장들이 대면 보고를 가면 큰 그림은 그려주지 않고 조그만 트집을 잡아서 혼내기만 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무능하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서 무릎을 친다. “아! 최순실 심부름 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챙기지도 공부하지도 못했구나.”
그사이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됐다. 바다에서는 한진해운이 가라앉고, 땅에서는 부동산 값이 치솟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거리를 헤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가 공무원은 ‘투잡’이 금지돼 있다. 정신을 딴 데 팔면 나랏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중히 권고드린다. 하나만 하시라. 청와대 수석이 주업인지 부업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겨레신문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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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양들중에 송곳 하나가
권력의 역린과 숨통을 제대로 관통했다.
당분간 대한민국에는 반칙권력집단과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더 많은 송곳들이 필요하다.
*비빔 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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