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돌 화폐 섬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마이크로네시아에 있는 한 섬에서는 '페이'(fei)
라고 불리는 커다란 돌 바퀴를 화폐로 쓴다고 한다.
좀 황당하긴 한데, 섬 주민들에 따르면 굳이 그걸
운반할 필요가 없단다. 그냥 페이의 주인이 누구인
지를 알고만 있으면 된다는 것. 심지어 바다에 빠져
을 때도 주인이 누구라는 것만 확인하고선 화폐로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1898년 독일 정부가 스페인으로부터 이 섬을 사들
인 뒤, 각 지역 추장들에게 도로를 복구하라고 지시
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고심 끝에 관리들이 각 집에 있는 '페이' 위에다
정부 소유의 검은 십자 표시를 하였다. 그러자
원주민들이 나와서 일을 시작했고 일이 끝난 다음,
정부는 그 표시를 지워주었다고 한다(고병권,'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개그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지금의
아파트 값이란게 일종의 돌 화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말 부동산 광풍이 몰아닥쳐 나라 전체가 들썩인 적이 있다.
어느 지역은 순식간에 몇 억씩 집값이 올랐다고 한다. 그때 난 정말 궁금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그 차액으로 어떤 행복을 누렸는지가.
집을 팔아 그 돈으로 평소에 꿈꾸던 여행을 실컷 했다든지, 그동안 도와주지 못했던
친지들에게 큰 선심을 썼다든지, 아니면 억지로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든지. 불행히도 그런 이야기는 단 한 건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또다시 재테크를 해서 더 큰 아파트로 갈 계획에 돌입하거나
아니면 그저 자산이 늘었다는 뿌듯함으로 만족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보면, 소위 '부동산 시세'라는 게 아파트라는 돌 화폐에다 낙서를 했다 지웠다
하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내친 김에 좀 엉뚱한 질문 하나.
대체 왜 그렇게 크고 멋진 집이 필요한가? 아파트 광고를 보면 우리 사회의 집에 대한
욕망의 구조가 한눈에 드런난다. 일단, 평수도 엄청난 데다 화려한
조경과 그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통유리창, 그리고 럭셔리한 인테리어.
아마 이것들이 집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들인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멋드러진 공간을 누가, 어떻게 쓰는 거지?
광고에는 대개 아름다운 여배우 한 명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혹은 와인잔을 들고 서 있기도 하고. 다른 가족들은 다 어디로 갔지?
그 넓은 집에 달랑 혼자 산단 말인가? 인테리어만 생각하면서?
그게 어디 주거공간인가? 유리 상자지. 맞다.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란 더이상 식구들이 몸 부비며 사는 집이 아니다.
잘 꾸며서 값이 오르면 잽싸게 팔아치우는 유리 상자에 불과하다.
설령 가족이 산다 한들 그들이 그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대체 얼마나 될까?
그 정도 재산을 소유하려면 실업자들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잠자는 시간을 빼면 두세 시간? 기껏해야 서너 시간.
더구나 가족이래봤자 세 사람 혹은 그 이하 일 것이다. 가족이라 하기도 뭣한 숫자다.
요컨대, 우리 시대의 아파트란 셋을 넘지 않는 가족이 하루 두세
시간을 점유할 뿐, 대개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일 뿐이다.
이보다 더 썰렁할 순 없다.
그러고 보면, 집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화려한 가구들인 셈이다.
가구들을 섬기느라 그렇게 큰 집이 필요하고, 그 집을 소유하기 위해 평생을 전전긍긍해야
하다니. 세상에! 하긴 아파트뿐이랴. 자동차며 별장이며, 주식이며 모든 종류의 재산이 다 이렇다.
사람들은 재산을 누리기보다 섬기기 바쁘다.
뼛속 깊이 . 자본의 노예인 것.
"삶이냐, 소유냐?" 이 고전적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가?"
(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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