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감 또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라고 하는
구름들의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정지되어 있긴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 역사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를 또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간은 연속적이지 않고 공간에 그대로 투영되어 옷처럼 입혀져야 비로소 모양새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다른 말로 '변화의 과정'이고
공간은 '변화의 마당'이다.
변화의 과정은 마당이 있으므로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공간 또는 시공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낫다.
다시 구름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면
시공간은 구름과 같다.
모든 구름은 제멋대로 갑자기 생겼다가 제멋대로 사라진다. 도둑처럼 갑자기 들이닥친다.
그래서 시간의 도둑이라는 말은 틀렸다.
시간 자체가 도둑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니 몇 살이고(태어남에 줄세우기)', 시간은 돈이다, 타임머신,타임루프,타임슬립 등은 모두 환타지다. 그냥 상상으로 그려낸 흥미있는 환타지 ! 딱 거기 까지다.
잠깐 여기서 질문이 있을 것이다. '나이'와 '시간은 돈이다'는 현실적인 것이지 않냐고? 그렇게 착각할 수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의 그래프트(소설 '마나인더마블스' 중에서)인 통치이데올로기와 피지배 계급의 집단 무의식에 긴 세월 엄청시리 세뇌를 해놔서리~ 말이다.
근데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시간의 본래 의미 즉 변화의 과정과는 전혀 무관하게 권력집단들이 꼴리는대로 유리하게 다른 의미로 주물러 갖다 바른 것이다. 사회가 본래 그런 것이니 현재 게임의 룰에 따라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제때 제때 열심히 부지런히 등골이 휘어져도 룰에 맞춰 각잡고 살아라 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자꾸 과거,현재,미래 처럼 이어진 길다란 선으로 생각한다. 시간(시공간)은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다. 시작과 끝이 없이 수많은 변화의 과정과 변곡점들만이 있을 뿐이다.
주식지수 그래를 보면 수많은 변곡점들이 있고 그 발자국 같은 흔적을 쭉 하나의 선으로 이어 놓았지만 사실은 각 지점들은 인과관계가 없다.
점들은 각각의 변화의 과정들일 뿐이지 앞뒤를 이어주는 맥락이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시공간)에 대한 이해도 주식지수 그래프의 선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간(시공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동일한 시간(시공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간(시공간)은 구름처럼 무수히 많은 변화의 과정들이 얽히고 교차하는 것이다.
원인도 결과도 없다.
도둑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고 또다시 어딘가에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뇌기억때문에 잔상이 자꾸 남아사건들이 마치 일렬로 줄 선 것처럼 착각하면서 인식의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시간(시공간)은 그것 자체가 에너지이며 변화이며 과정일 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모습도 하나의 얽히고 교차하는 시간(시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시계라는 집단관념에 얽매여 절대시간이 본래 존재하는 것으로 어느 순간 인식하지만 그런 것은 애초에 없다.
시간은 각자의 자리(공간)마다 전부 다르다.
시간(시공간)의 변화 리듬과 공명하는 사람존재만이 비로소 생명의 본질을 깨우친 '인간-나'가 되는 것이다.
시간(시공간),변화의 리듬과 공명을 온몸으로 이해해야만 넘치는 것, 부족한 것, 권력, 영웅, 구세주, 예언, 예측 그리고 어떤 조작된 믿음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쳐 몸(변화의 작은 마당)과 시간(시공간)에 얽혀 있는 경계면(몸 안과 밖이 서로 얽혀 있는 조화와 질서의 망)이 찢어져 어긋난 누군가가, 만든 기울어진 믿음에 삶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자신이 꼭두각시인 줄도 모른채 주체적이라고 착각하고 살지 않는가.
지배와 피지배가 엄연히 갈리는 암묵적인 구동 시스템과 기득권력자들의 탐욕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을.
이것을 이해해야만 (이어진,앞으로 나아가는)시간과 역사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편집된 하나의 환영(幻影)임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들 앞날에 레드카펫이 멋지게 깔리고 축가를 연주할 악단이 기다리는 그런 기차역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비빔 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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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응되는 한자어는 ‘인간(人間)’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한자어가 본래부터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여 온 것은 아니다. 이것이 ‘사람’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식 한자어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일로 여겨진다.
‘인간’이라는 한자어는 ‘인생세간(人生世間)’이 줄어든 말이다. 그 글자 뜻에 충실하여 해석하면 ‘인간’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띤다. 그렇다. ‘인간’은 본래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지내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존재했다. ‘천계(天界)’에 대해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월인석보”에 나오는 “人間은 사 서리라(인간은 사람의 사이이다.)”라는 풀이가 그 본뜻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인간’이 ‘세상’이라는 의미로 쓰였음은 다음의 표현에 보이는 ‘인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세상 어느 곳이나 청산이 있다.
※ 인간만사(人間萬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세상의 모든 일은 새옹지마이다.
※ 인간은 고해(苦海)이다:세상은 고해와 같다.
※ 천상인간(天上人間):천계(天界)와 하계(下界).
그런데 지금의 ‘인간’은 ‘세상’이나 ‘세간’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세상에 사는 주체인 ‘사람’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이 ‘사람’이라는 의미는 그 본래의 의미인 ‘세상’과 관련하여 파생된 의미가 아니라 새롭게 첨가된 의미이다.
첨가된 의미 ‘사람’은 일본식 한자어 ‘人間’이 지니는 의미이다. 일본식 한자어 ‘人間’이 갖는 의미로부터 차용되어 전통적 한자어 ‘人間’에 첨가된 의미가 바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세상’을 뜻하는 ‘인간처(人間處, 사람이 사는 곳)’라는 잉여적 의미의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人間’이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차용된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조항범, 충북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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