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대들이 갈구하는 이상은 높지만 현실과의 간극은 너무 크다. 국내에는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이 거의 전무한 탓에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제주에서 원격근무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소준의 카일루아 대표의 이야기에는 한국 디지털 노마드의 현실적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초중고교 12년 동안 모두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것을 배우는 한국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결코 창조적이지도 않고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원격근무로 함께 일하기 적합한 사람들을 찾기 어려워 힘들었지만, 점차 디지털 솔루션에 익숙해지면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제 스스로를 들여다보자.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명백한 현실을 외면하며 도둑같이 다가올 미래를 팔짱만 끼고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좁은 땅덩어리, 보스와 협상할 여지가 없는 문화적 차이를 핑계로 거부만 할 일은 아니다. 생각이 젊은 당신이라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 도태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디지털 노마드에 도전해볼만 하지 않을까.
댓글 11내 댓글
태웅이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또 재벌 감싸고 편 들어주느라 어렵겠지만... 제발 근태관리가 되겠느냐는 나태해지지 않겠느냐 등의 셀프노예 댓글은 안올라왔음 좋겠네요..
기쁘다
기본소득 혹은 그와 비슷한 시민할당,참여소득,시민급여제도 등 꼭 도입되어야한다. 사람들이 보다 문화생활과 사회적 철학적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기본소득 도입과 더불어 교육 개방, 정보 개방, 문화생활 개방, 마음수행, 예술활동 등이 함께 동반되어야한다.
cutecomi
그리고 말이 좋아 디지털 노마드이고 프리랜서 이지 결국은 비정규직이라는게 제일 큰 문제 아닌가. 4대 보험 적용 되나? 퇴직금은? 결국은 회사가 사무실 운영 관련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각자 재택 근무하라는 것 뿐이지 않나. 실제 근무시간의 단축이 있지 않다면 회사도 아닌 집에서까지 휴식이 없는 삶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모아이
정작 이런 기사들을 접하고 이런 또다른 방법과 세계가 있다는걸 알아야 할 10-20세대들이 과연 이 기사까지 닿을수 있을까? 유상무상무상의 문란한 사생활,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엔 수백수천개의 댓글이 달리는데...역량있는 예능 피디들이나 드라마 피디들 혹은 영향력있는 연예인들이 힘을 합쳐서 이런 유익한 정보들과 희망적인 제시등을 10-20 세대들에게 보다 쉽게 전략적으로, 홍보시켜주고 침투시켜줬으면 좋겠다. 여느 나라보다 티비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과 사용률, 응용력이 뛰어난 한국 젊은층들이 그 자산과 능력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카이만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은 국내 회사, 상사들의 기존 행태에 구애받을 것 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챙기기 위해 행동해보자.
cutecomi
장소만 파괴되는게 아니라 시간도 파괴되는게 문제 아닌가? 요즘에 카톡으로 업무지시 받는 것도 힘들다고 난리인데 디지탈 노마드? 24시간 업무 지시 받는 것과 뭐가 다름?
자유지성인이다
해커들 때문에 어떻게 믿고 메시지를 주고 받나? 이기사 댓글란도 두번 시도해서 겨우 쓸수있게됬는데
DigginOnU
프리랜서 시장도 어느 정도 질서가 필요한데, 가끔 보면 진짜 너무할 정도로 막 부려먹음. 놀고 있는 인간들이 전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것도 이유다.
intell
우리나라 도입되긴할까 ㅡㅡ
눈썹도사
나라꼴 말아먹고도 유유자적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파독파독 그리운 우리 아빠 타령이나 하는 닭그네보단 훨 낫다
붉은바다
이게 창조경제이다.병든닥정부여
<*오마이뉴스 기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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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더 이상 미치지 않으려면(No-Mad) 기존의 틀에서 꿈쩍도 안하는
교육시스템, 교육자 들에 대한 혁신을 하루 빨리
시작해야 한다.
*비빔 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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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쇼’ 하는 학교에서 벗어나기
저자 김용택은 1969년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디뎌, 38년의 교직생활 후 2007년 2월 정년퇴임한 교사다. 학교를 떠난 지도 10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비정상적인 교육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블로그와 각종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교육의 정상화를 부르짖고 있다. 학부모의 애환을 들으며 비정상적인 교육의 현실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이번 책을 낸 주된 동기였다고 고백한다.
대한민국 교육계는 ‘교육 쇼’를 하고 있다. 학교는 시장판이다. 아니, 갈수록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초등학생들마저 3학년 앞서 공부하면 떨어지고, 4학년 앞선 공부를 해야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이른바 ‘4당3락’의 선행학습을 당연시하는 현실이 아닌가? 고등학생들의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며 학교폭력과의 전쟁도 그대로요, 점수로 사람의 가치마저 서열화하는 일제고사도 그대로다. 인권의 사각지대인 학교가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현실 또한 바뀌지 않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진보교육감들이 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지만 그중 학교 민주화를 선결 과제로 꼽는다. 민주주의가 교문 앞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장래 민주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작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학생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학교운영위원회는 점수가 필요한 교사위원과 이해관계가 걸린 학부모위원 그리고 친교장 성향의 지역위원으로 구성되어 사실상 학교장의 들러리일 뿐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민주적인 실천도장이 되지 못하는 학교의 ‘교육 쇼’를 그만두고 아이들의 삶을 안내하는 진정한 공교육의 장으로 학교가 탈바꿈해야 한다는 노스승의 외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교육에서 벗어나기
지난 47년간 무려 38번이나 입시제도를 바꾸고 대입전형 방법을 3298가지나 내놓았지만, 경쟁적인 교육환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던 대통령의 화려한 구호는 ‘모든 아이가 행복한 학교’라는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다. 우수한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어 특기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하겠다던 정책은 입시라는 괴물 앞에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우수한 인재를 뽑아 일류대학(?)에 진학하게 한들 학문 탐구는 뒷전이고 취업 준비로 바쁜 것이 학생들의 현실이다.
최근 5년간(2009~2013학년도)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교는 총 1375개교, 참여 학생은 20만 7434명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교가 84개교(2009학년도)에서 515개교(2012학년도)로 6.1배(431개교) 증가했고, 참여한 학생은 1만 6947명(2009학년도)에서 6만 7129명(2012학년도)으로 4배(5만 182명)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부산·대구·울산·충남·충북교육청은 4년간(2010~2013학년도) 병영체험캠프에 총 2억 1363만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내린 것으로 파악되었다. 교육청이 나서서 학생들의 병영체험을 지원하고 군사문화를 주입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반민주주의 교육이요, 반교육이 아닌가?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사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필요한 최저임금에 관한 배경지식이나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률상식과 같은 실질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노동 현장으로 진출하거나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당장 피부로 느낄 현실 문제에 관해 학교에서 제대로 된 토론 한번 해보지 않은 아이를 배출하는 학교를 제대로 된 교육의 공간이라 얘기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교육을 계속할 것인가?
‘경쟁과 자본에 종속된 교실’에서
벗어나기
교육을 ‘상품’이 아닌 물과 공기처럼 누구나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공재’로 보는 유럽 선진국 교육에는 경쟁도 없고 일제고사도 없다. 일등지상주의도 사교육도 없다.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언제든지 무료로 배울 수 있고, 경쟁이 없으니 학벌도 없으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 가운데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자신의 수준에 맞게 준비할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무한경쟁에 내모는 현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교육이 상품이 되면 경제력이 있는 가정의 아이가 유리하다는 걸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왜 우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 전 승부가 난 경기에 임해야 하는 아이들의 기막힌 상황을 내버려두고 있는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청소년기를 반납하고, 살아남기 위해 친구마저 적으로 간주하는 경쟁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원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늘의 별따기 같은 취업시장을 돌파하기 바쁘게 갚아야 할 학자금이 삶을 옥죈다. 태반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으로 살며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젊은이들의 현실을 포착하기에는 ‘7포 세대’라는 말로도 부족한 감이 있다.
경쟁과 효율에 무게중심을 두는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중시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판능력을 상실한 채 자본의 충실한 노예가 되는 시민을 길러내면서 평등과 복지의 가치를 실현하는 나라를 꿈꾸는 건 어불성설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뒤틀린 교육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과욕’에서 벗어나기
사랑은 약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하다. 잘못된 사랑은 자식을 망친다. 자녀관이 뒤틀리면 아이가 가진 고유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안내자로 만족하기보다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게 된다. 요즘 젊은 부모 가운데 그런 사람을 더러 본다. 자식이 하자는 대로, 좋다는 건 뭐든지 해주고, 행여 남에게 뒤질 새라 유치원이며 학원이며 고액과외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기어이 해주고 만다. 아이가 먹고 입고 뛰노는 것조차 아이 본인이 아니라 부모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다. 제 자식이니까, 제 욕심대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다.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과욕은 잘못된 사랑이다.
식물이 자라는 데 햇볕과 물과 공기가 필요하듯, 사람 또한 흙을 밟으며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의 혜택을 듬뿍 누리며 자라야 한다. 꽃이 왜 피고 열매가 어떻게 맺는지, 바람이 왜 불며 빗방울은 어떻게 해서 떨어지는지, 우리를 살찌우는 먹을거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농부와 어부들이 흘린 땀방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대자연의 운행을 통해 하나하나 보고 듣고 배우면서 자라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성숙한 부모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 땅에서 교육자로 산다는 것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아들딸들에게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우리는 언제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청년들이 꿈을 펼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침묵하는 교육자들에게 묻고 싶다. 왜 우리는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딸들에게, 우리의 제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가?
교육 없는 나라에 교육자가 설 곳은 어디인가? 수많은 교육자가 한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얼마든지 교육을 살릴 수 있지 않나? 우리도 유럽의 교육선진국처럼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배우는 즐거움이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있지 않나? 교육이 상품이 아닌 공공재라는 인식만 있어도 교육의 정상화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40년 가까이 교단을 지켰던 늙은 교사는 지금도 교육의 정상화를 꿈꾼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그게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그날을 기다린다.
*김용택, '참교육 이야기'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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