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여러 개 붙어있는 광고를 본 기억이 아직 또렷하게 남아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후 그 앙증맞은 것들이 애플의 컴퓨터 모니터라는 것을 알고
꽤나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컴퓨터 모니터 색상은 투박한 화이트 내지는 베이지였으니 말이다.
당장 달려가 사고 싶었지만 매달 용돈 받아 생활하는 학생에게 일반 모니터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애플 모니터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 후로 몇 년 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칼럼니스트 캐리가 맥북으로 글을 쓰는
장면을 보고 다시 한번 구매욕을 느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제품의 뛰어난 기능보다 맥북에
새겨져 있던 한입 베어 문 사과 로고가 탐났다.
또 당시 맥북 사용자들에 대한 ‘창의적이고 세련됐다’는 이미지도 한 몫 했다.
할리우드 배우에서 단짝 친구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아이팟에 이어 아이폰, 아이패드가 출시되면서 주변에서도
애플 제품을 쓰는 사용자들이 늘어났다.
몇 년 전에 비해 가격도 훨씬 합리적이고 사용하기 편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품 이미지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애플 제품들이 ‘예쁘지만 친해질 수 없는 할리우드 배우’였다면 지금은
‘친하고 편한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애플의 아이폰은 기능 위주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재미’로 승부수를 걸어 성공했다.
이제 사람들은 아이폰으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뿐만 아니라 유용한 정보도
찾고 여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애플의 성공은 회사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로열티를 보면 뚜렷이 나타난다.
최근 UBS리서치가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5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애플 사용자들
가운데 무려 89%가 ‘앞으로도 아이폰을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2위를 차지한 HTC(39%)와도 엄청난 차이다.
당신은 내가 주는 것을 좋아하게 될 거야
스티브 잡스의 경영철학을 아는 사람들은 묘한 아이러니를 느낄 것이다.
잡스는 그 동안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주지 말아라.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왔으니 말이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전에 그 제품들이
‘정말 필요하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애플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마케팅의 역할은
‘소비자의 니즈 충족’뿐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 창출’도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니즈를 창출한다는 것은 그들이 미처 깨닫고 있지 못했지만 시장에 출시됐을 때
‘저 제품 정말 필요하다’라는 마음이 들만한 제품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소비자의 니즈 창출이 니즈 충족보다 어려운 건 당연하다.
큰 투자비를 들여 개발한 제품이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사라진 사례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신기할 정도로 ‘소비자의 니즈 창출’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그 분야에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스스로 브랜드가 된 잡스
애플이 소비자들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잡스’다. 그는 한결같이 검정 터틀넥 셔츠와 진 차림으로 애플의 신제품을 발표해왔다. 언젠가부터 서점에서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방법, 창의적인 사고법을 분석한 서적부터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제 그의 독단적이고 외골수적인 경영방식까지도 제품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고집 내지 장인정식으로 해석돼 애플 제품에 대한 믿음을 높여주었다. 예전 제품에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것만으로 소비자들이 품질을 믿고 샀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 역시 제품의 품질을 보증해주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던 회사가 소비자들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회사로 바뀌기까지, 또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품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기까지 잡스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했는지 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훌륭한 사람과 한 시대를 함께 공유해서 영광이었다는 건 바로 이런 점을 뜻할 것이다.
(대학내일, 손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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