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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Mash up

시간과 기계 그리고 공간과 인간 - 12

by Azzurro 2017. 11. 30.


얼마 전 주말에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최민식과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 ‘루시’를 오랜 만에 다시 보았습니다.


<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다...>


잠...잠시만요….!

판타스틱한 그래픽에 비해
스토리 구성이 많이 아쉬웠던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를
최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이 2014년도에 내놓은
영화, ‘루시’ 마지막 부분에 나온
대사이긴 한데…..

시간…어쩌구 저쩌구에
저는 이의를 제기합니돠아 !!

영화의 끝부분에
박사들 앞에서 루시가 말하지요.

"인간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그걸 기반으로 존재 이론을 확립했지만 계측의 개념부터가 잘못됐어요.
모든 사회 시스템은 어렴풋한 밑그림에 불과해요.
우리 모두 1 더하기 1은 2라고 배웠죠.
하지만 1 더하기 1은 2였던 적이 없어요.
사실 숫자나 글자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린 스스로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자신의 존재를 축소했어요.
우리의 존재의 무한함을 외면코자 인위적 잣대를 만든 거죠."
"인간이 특별할 게 없고, 세상이 수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뭐로 움직이죠?"
"질주하는 차를 상상해 봐요 무한대로 속도를 올리면 차는 결국 사라지죠. 그럼 뭐로 차의 존재를 증명할까요?
존재를 규정하는 건 시간이에요.
시간이야말로 유일한 계측의 단위로
물질의 존재를 증명하죠.
시간이 없으면 우린 존재하지 않아요."

존경하는 ‘베송’ 행님께서 형식과 내용을 찰지게 하기 위해 철학적인 시간개념을
영화에 버무리려고 시도는 했는데...

절반의 실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영화 ‘루시’ 전체에 아우르는
그래픽과 주요대사가 공간의 변화와 공간개념을 더 확연하게 드러내는데도

마치 혀 짧은 훈장선생님이
“나는 바담 풍 이라고 해도
너희는 바담 풍이라고 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고 한 것 처럼,
감독님의 의도가 자꾸 꼬입니다.

존경하는 철학자 하이데거 샘의
'존재와 시간’에 엄청 꽂혔는지…
주요 대사들이
그 저서와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근데 뇌 활용 100%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가설은
받쳐주는 힘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최근 뇌과학계의 동향을 보면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사이먼 러플린 교수는

‘뇌의 부피를 키우고 뉴런의 길이를 확장하면 지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단점은 뇌의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많이 쓰면 정보처리 과정에서 지금보다 많은 열이 발생하고,
결국은 체온이 올라가서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우리 몸에서 화학반응과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려면
체온이 늘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뉴런이 지금보다 길어지면
신호전달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려
생각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과학저널 작가인 더글라스 폭스는

‘뉴런이 전기신호를 발생시킬 때 사용하는 단백질(이것을 이온채널이라 한다)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하다.
바로 이것이 모든 한계의 근원이다.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 미치오 카쿠의 저서 <마음의 미래> 내용에 보면

윗 글과 관련하여 이렇게 씌여 있다.

‘뉴런을 지금보다 굵게 만들어서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를 높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이때도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져서 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뉴런이 굵어지면 뇌의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신호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길어진다.

뉴런들 사이의 연결망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에너지를 더 소모하여 추가열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연결망이 복잡해지면
뇌가 커지고 정보처리 속도는 느려진다.

여러 가지 물리적 요인을 고려할 때,
우리의 지능은 이미 최고조에
도달한 것 같다.


극 중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노먼 박사의
가설에 애초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뇌는 항상 과부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아주 효율적으로 100퍼센또 그 이상을 구현하는 ‘이쪽이 일할 때 저쪽이 쉬고’ 하는 멀티 펑션 작동 방식으로 진화해 왔는데 아인슈타인의 뇌를 잘못 가설한 어느 학자의 이론이 왜곡 확산되어 그런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측된다.

암튼 뇌활용에 대한 건
그럴듯한 상상력이 깔린 영화이니 만큼
그런 초월적인 능력자가 있다 치고

그 다음,
시간개념에 대한 살짝 많이
빗나간 점을 짚어 보겠습니다.

앞에서 루시의 대사를 봤는데요....

숫자도 나오고 존재도 나오고

무한대의 속도도 나오고 하는데...

이것 모두 공간개념입니다.

숫자는 사물의 변화를 이해하는 개념입니다.

수학도 마찬가지.


사물의 변화가 바로 공간의 변화이지요.

무한대의 속도로 달리는 차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면서 시간만이

존재를 규정할 수 있다라고 정리하는데...

본다는 것은 빛을 통해 본다는 건데...

여러분! 빛은 시간일까요? 공간일까요?

빛은 입자이면서 파장의 성질도 갖고

있다고 알고 계시죠...

빛은 그 자체가 사물이며 공간입니다.

공간변화의 표지자이며 첨병이죠

항상 맨 먼저 변화를 드러내고 알려 주지요.

모래시계 자체가 공간이듯이

우리가 인식하고 보는 것은 모두

공간과 사물입니다.

기억의 차서(순서와 질서)때문에

자꾸 시간개념으로 헷갈려 합니다만....

하이데거 샘도 결국 ‘현존’이라는 용어를

지어내며 시간과 동시에 ‘현재’라는 공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시간과 인간> 시리즈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시간은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시간의 실체는
사물의 변화, 공간의 변화입니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공간의 변화로 이해하기 어려우면
시공간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현재와 내 존재가

비로소 보입니다.

나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루시가 말한 것,

<존재를 규정하는 건 시간이다>
는 이렇게 바로 잡습니다.

<공간의 변화와 현재가 보이는 순간
시간은 사라진다.>

​*비빔 박선생

추신: 루시가 인터넷과 혼연일체(?)가
되어 버린 후 한통의 문자를 보냅니다.
‘I am everywhere’

​이 봐라~~~ 자기도 공간인줄 알고 있었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