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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Mash up

시간과 기계 그리고 공간과 인간 - 11

by Azzurro 2017. 11. 25.

앞서 <시간과 인간 8>에 올린 내용 중에

‘운運과 카이로스의 영역’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운運과 카이로스의 영역’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법륜스님 즉문즉설의 상담 사례로
살펴 보겠습니다.

*비빔 박선생

**********************************

(앞부분 생략)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과의 차이는
나는 내 성질을 알고,
그래서 피해갈 수 있는 지혜는 있다는 거요.

그런데 저기는
지 성질도 모르고,
피해가는 것도 모르고, 그 차이에요.
내가 뭐 특별히 나은 게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욕심이라는 거요. 자기가 그런 생활태도를 가지고 “공무원이 되겠다. 교사가 되겠다. 결혼을 하겠다.” 한다면 그것은 욕심에 불과한 거다. 그러니 자기는 성질대로 살려면 어떤 직업을 가지면 되느냐? 예술가의 직업을 가지면 돼. 그러면 예술가들이 “성질 더러운 게 예술가 되나.”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런 뜻이 아니고.

그러니까 남의 사표가 되는 것, 이런 거 말고, 조각을 하는데 자기가 조각하고 싶어 미쳐서 하다가 기분이 빡 떨어지면 한 달 내내 배 깔고 엎드려 자다가, 또 그리고 싶으면 막 그림을 그렸다가, 또 놀다가 피아노치고 싶으면 막 치고 작곡을 했다 또 놀다가, 이래도 이런 것은 오히려 이런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더 정열적으로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술이 잘 나올 수도 있어요.

스티브잡스 같은 사람 성질 억수로 더럽다는 거 소문나 있어요. 성질은 더러워도 창조성은 있어요? 없어요?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한 여자의 남편이 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오. 그러나 어떤 기능에 있어서는 유용하다는 거요. 그래서 꼭 성질을 고쳐야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스님 같은 성격이 결혼한 남자로서는 부적한 성격이지만 중으로서는 또 괜찮은 성격이오.

사람들한테 여자들이 와서 “스님” 해도 매몰차게 끊는 거 이거는, 세상사는 데는 굉장히 나쁜 성질이지만 중 되는 데는 성질이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러니까 자기 성질을 살려서 사는 법도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같이 사는 사람입장에서는. 여러분이 볼 때는 “아, 스님하고 살면 좋겠다.”하면 살아보지. 완전히 쥐약 먹는 꼴이 날거요. 그런데 중 되기는 괜찮다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결혼을 하면 내 성질을 고쳐야 되고,
내가 승려생활을 할 때는 성질을 안 고쳐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그냥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이래도 되는 직업이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런 직업을 선택해서 성질대로 살든지,
안 그러면 자기가 교사가 되겠다하면
교사의 맞게 자기의 성질을 좀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되요.
그래야 애들이게 “먹고 싶지만 좀 참아라. 가고 싶지만 좀 멈추어라.” 이런 것을 가르칠 수 있잖아.

선생은 안 그러면서 애보고 그러라면 애들이 누가 말 듣고, 엄마는 안 그러면 애들보고 그러면 누가 말을 듣겠어. 그러니까 자기는 오늘 선택을 해야 돼. 내 성질을 고치려고 하니 잘 안 고쳐지니까 성질대로 살고, 이 성질로도 남에게 피해 안주는 직업을 갖겠다. 그럼 그런 성질을 갖고 방송작가는 되기가 좀 어렵지. 내일 당장 글을 써야 되는데, 오늘 싫다고 누워 자버리면 어떻겠어요. 안 되지. 그건 매일 매일 싫어도 써야 되고, 좋아도 써야 되고.

(뒷부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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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運과 카이로스의 영역이란

한마디로 <자기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운運과 카이로스’ 라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성질과 리듬을 깨닫고

삶과 공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펼쳐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기득 권력체제에

의해 굳어진 시계시간 시스템에 매몰돼

피튀기는 전장에서 살다 가는게 아니라

너도 나도 모두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공유하고 윈윈하는 세상.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를 만끽할 수

여유가 있는 세상.

자신의 타고 난 신체리듬대로 살아가는

세상.

이런 것들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된

이상한 시대에 숨이 막혀 쓰러져 가는

영혼들.

모두들 안 그런 척 가면을 쓰고

거짓 웃음이 만연된 사회.

어차피 더 나은 자리는 없습니다.

결국 소모되고 나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리듬과 속도대로 삶의 밀도를

만들어 내야만 날마다 진정으로

자신의 영혼이 웃을 수 있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멋진 요리와 럭셔리한 옷이 그대를

채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허기를

느끼게 할 뿐입니다.


위의 즉문즉설 사례처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카이로스와 운運의 영역으로

들어 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추신: 리버피닉스가 남주인공이었던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끝부분을 보면,
강성 반전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아들의
학교를 자주 옮기며 FBI요원들의 추적을 피해
도주를 일삼던 아버지가 아들이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고 가족의 틀에서 밀어내며 이제부턴 스스로의 길을 가라고 비장한 말을 건네며 떠난다.
이것이 바로 아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운運과 카이로스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세상에 원인을 돌려 부정하거나 맹목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은 허무할 뿐입니다.
개인은 사실 뒷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요새 흔히 말하는
흙수저 금수저, 부의 대물림,
기울어진 운동장.
이런 것 모두를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기운만 낭비되고 맙니다.
비판이나 개혁시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
<암살교실>의 코로센세가 학생들에게 전한

말씀을 다시 인용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거대한 사회의 흐름에 방해받아

바라던 결과를 못 얻을 일이

반드시 생길 겁니다.

그때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사회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솔직히 말해 시간 낭비입니다.

그럴 땐

세상은 그런 거라며

분한 마음을 어떻게든 넘겨버리세요.

넘겨버린 후

생각하는 겁니다.

‘사회의 흐름이 자신을 가지고 논다면.....

그 안에서 자신은 어떻게 헤엄쳐

가야 하는가....’


항상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아도 됩니다.

달아나거나 숨어도 됩니다.

반칙만 아니면

기습도 괜찮습니다.

비상식적인 무기를 써도 되죠.

의욕을 가지고

초조해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

언젠가 반드시

멋진 결과가 따라올 겁니다......>



*비빔 박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