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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Mash up

시간과 기계 그리고 공간과 인간 - 17

by Azzurro 2018. 1. 29.

​​근대적 시간의 탄생

너무 당연해서 그 기원을 묻기조차 멋쩍어지는 이런 관습은 사실 '근대'라는 새로운 시간의 도래와 함께 탄생한 것이다. 근대적 시간의 탄생. 이 시간은 지난 역사의 '순환적 시간' 관념과는 달리 '직선적 시간'으로, 한번 지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우리 의식에 자리 잡았고,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이 시간 개념에는 '속도'가 더해졌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이든 '빨리' 처리하는 것이 보편적 미덕(美德)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인류학자들의 연구는 각 사회마다 고유한 시간 개념이 있음을, 아직(?) '근대'를 맞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여 준다.
예전에는 각 사람들의 삶의 리듬이 커다란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사회적 시간을 형성했다면, 근대의 시간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리듬에서 분리된 형식으로 점점 독립되었으며, 그것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포획해 결국 자본주의적 시간이 만들어 낸 사회적 시간에 개인의 리듬을 송두리째 맞추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 속에서 느림이나 한가로움은 낭비와 게으름, 무능력과 동일한 것이 되어 비난받게 되었다. 자신의 리듬과도, 또 자연의 리듬과도 상관 없이 자본주의의 속도에 끌려가며, 자기 스스로를 규율하고, 그 속도와 시간을 내면화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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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공간의 탄생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종교의 여부를 떠나 성당에 들어갈 때와 집에 있을 때, 직장에서 일할 때의 행동과 말과 사고가 다 달라지는 데서 알 수 있듯, 공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조직한다. 그런데 근대의 공간은 명확한 기능적 분리를 통해 '구획화'를 가속화시켰다. 예컨대 17세기 이전에는 '집'이라는 곳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후로는 '집'에는 '공적 공간'의 영역이 없어지다시피 되었고, '침실'은 사적 공간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교단이 있고, 학생의 책상이 일렬로 배열된 학급은 근대에 형성된 것인데, 이는 그 속에서 활동하는 교사와 학생의 행동을 규제한다. 교사는 학생 전체를 감시하는 위치에, 학생은 감시받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책상을 원형으로 배치한 교실과 일렬로 배치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의 방식이 같지 않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을 '공간-기계'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며, 근대적 공간의 배치가 어떤 삶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추적한다.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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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취재한 노르웨이, 일본, 부탄, 그리고 탄자니아는 부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각기 달랐다. 부와 행복도는 결코 비례하지 않았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지수2017’ 1위는 노르웨이였다. 유엔의 ‘세계행복리포트 2017’ 1위 국가도 노르웨이였다. 노르웨이는 올해 행복과 삶의질을 평가하는 국제기구 평가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노르웨이의 1인당 GDP는 7만812달러(2016년 세계은행 발표 기준)으로 세계 4위다.

돈도 많지만 국민행복은 그보다 더 높다. 실제 OECD 자료를 보면 노르웨이의 삶의 질은 9.6점(10점 만점)으로 물질적 상태(8.8점)보다 높다. 노르웨이가 단순히 ‘돈이 많아서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만큼 정책적 노력을 많이 했다.

노르웨이 사회의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
복지제도와 일-가정 양립 환경은 사회구성원들이 박터지게 싸우면서 성취한 것들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들은 100년 전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노르웨이 사람들은 주당 37.5시간 아래로 일한다. 시간이 많으니 틈만 나면 자연으로 놀러가고, 아이도 제 손으로 직접 기르니 행복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삶의 질’을 훼손하지 않는 관점에서 문제풀이에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아니지만 ‘가장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취재팀은 확인했다. 정부는 국가총행복(GNH)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예컨대 GNH가 낮은 지역에는 별도로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다. 제 아무리 중요한 개발정책이라도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주민들의 행복도가 낮아진다면 거부된다. 환경영향평가가 아닌 ‘행복영향평가’인 셈이다.

부탄이라고 유토피아는 아니다. 지난 10년간 8.6%의 가파른 성장속에 청년실업률은 10% 안팎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서구 문물유입에 따른 서구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행복에 대한 개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럼에도 성장을 위해 효율성을 강조해온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한국의 미래’인 일본은 여전히 경제의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관적 행복도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성장률과 1인당 소득, 청년실업률 등 거시지표가 최근 개선되면서 생활만족도는 높아지지만 그대로 행복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는 만족하지만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경향성은 되레 확대되고 있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어느정도 포기하고 현실의 만족에 집중하는‘작은행복’ 현상이 확대되는 이유다. 민주당 내각은 주관적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고민을 했지만 자민당 내각으로 바뀌면서 양적 경제성장이 다시 강조됐다. 한국도 성장률, 고용률 등 지표에 매달린다면 일본의 뒤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거시지표는 향상돼도 국민들은 불행한 괴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빈국 탄자니아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는 ‘기회 상실’이었다. 무너진 공교육은 신분상승 기회를 박탈했다. 부정축재와 부의 대물림에 따른 빈부격차는 노동의욕을 꺾는 것으로 보였다. 60년간 계속되는 1당 체제는 정치적 무기력증도 불러왔다. 탄자니아에서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촛불시위에서 비롯된 평화적 정권교체를 부러워하는 지식인층이 많았다.

​*박병률 외 3명, ‘지금, 행복하십니까?’(17화) 스토리펀딩 글 중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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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무한 탐욕한 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의 최상층부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대중들이 공간을 망각하게 했고
시간과 돈을 합치시켜 대중들을 교묘히 그것의 노예로 예속시켜 마구 전횡을 휘둘러 왔던 것이지요...

먼저 깨어난 자들이 가까운 사람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세뇌에서 각성된 촛불이 하나 둘
모여야 경쟁의 술법에 휘둘려
고유의 빛과 생기를 잃어버린
우리의 몸-공간과 삶-공간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비빔 박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