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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Mash up

시간과 기계 그리고 공간과 인간 - 16

by Azzurro 2017. 12. 28.

<에릭요한슨 작품>


아무래도 <컨택트>의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컨택트> 속의 시간은 우리가 아는 그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영화의 시작이었던 부분이 사실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었으며, 루이스에게 자꾸만 스쳐 지나가는 '딸에 대한 과거의 기억'은 사실 '태어나지도 않은 딸의 미래'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시점에 엮이고 뒤죽박죽 되면서 루이스는 점차 혼란에 빠진다.
<컨택트> 속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 마치 동그라미처럼. 이러한 설정은 (1) 헵타 포드가 사용하는 언어가 선형이 아닌 원형이라는 점, (2) 루이스의 미래 딸 이름이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이름이 되는 한나라는 점(HANNAH), (3) 영화 초반에 루이스가 'We are so bound by time…by its order'라고 말하는 점과 같은 복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미래의 기억', '벌어지지 않은 과거'는 루이스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관객들에게는 시간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당연한 태도를 상기시킨다. 루이스의 말대로, 우리는 온전히 시간에 묶여있다. 물리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인간의 시간은 대부분의 경우(루이스와 같은 케이스가 아닌 이상) 선형으로 흘러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현재를 올바로 보지 못하고 느껴야 할 것들을 느끼지 못한다. 선형적인 시간에 메인 자는 마땅히 지금 당장만을 보고 살기도 바빠야 할 것임에도,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바꿀 수 있는 것에는 무관심하게 살곤 한다.
단편적으로, 영화 내의 루이스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외계 비행체가 미래에 지구에 가져올 종말을 두려워하며 현재 그들과의 관계의 희망, 가능성은 눈뜨고도 보지 못한다. 그저 비행체들을 격파하고 외계인들을 몰살하려 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헵타 포드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현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와 물리학자인 이안 도넬리
그렇다고 이런 인간의 태도를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며, 준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재가 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할 뿐이다.

미래를 모두 알게 된 루이스는 그 반대를 경험한다. 지구에 가져올 평화를 위한 힌트를 미래로부터 얻어와 현재에 그대로 실행한다. 전인류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행동은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가 본 것은 긍정적인 것뿐만은 아니었다. 이안과의 결혼이 이별과 딸의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을 알지만, 현재의 선택을 바꾸지 못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하는 꼴이다. 이안이 '만약 당신이 미래를 모두 알게 된다면 현재를 바꾸겠냐'는 루이스의 질문에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으로 맞받아치는 장면, 그리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둘의 모습은, 별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가끔 내가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현재를 적극적으로 바꾸며 더 심리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안을 끌어안는 루이스의 눈동자는 '편안함'이나 '안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알고 현재를 사는 것은 그렇게나 쓸쓸한 것일까. (나중에 이안에게 루이스는 자신이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 때문에 이안이 떠난다는 설정이 있는 걸로 봐서,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은 곧 두려움과 불화의 원인이 되나 보다)

​미래의 슬픔을 알고도 현재를 바꾸지 않는(혹은 바꾸지 못하는) 루이스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by 예또 , brunch앱 글 중에서